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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소개┃모든 시민은 교사, 예술가, 정치가다
모든 시민은 교사, 예술가, 정치가다
─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를 통해 본 시민교육의 흐름과 방향
주은경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부원장
민주주의는 그것을 실현해나가는 주체 없이 성장하지 않는다. 그 주체들이 어떤 가치와 태도를 내면화하는가, 개인의 삶, 공적인 삶, 정치적 삶의 층위에서 어떤 삶을 만들어 가는가에 따라 그 사회의 품격이 결정된다. 여기에 시민교육의 존재의미가 있다.
이런 전제 위에 이 글은 현재 시민교육의 흐름에서 참여연대 부설기관 아카데미 느티나무(이하 느티나무)의 시민교육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시민교육의 주체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한다.
1. 한국 사회 시민교육의 지형 변화
지난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 민주주의의 후퇴, 진보정당의 무력화 과정, 노동조합운동의 약화, 시민운동의 다원화는 한국 사회 진보적 시민교육의 지형을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이다. 진보정당과 노동조합운동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의 중요한 거점이고, 그 거점들이 어떤 활동을 얼마나 활발하게 하느냐, 시민들의 요구를 얼마나 대변하고 운동하느냐, 이것은 시민운동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당과 노조는 시민들의 정치적·경제적 요구를 대변하는 힘 있는 주체가 아니다. 시민교육에서도 당과 노조의 역할은 매우 미미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사회 시민교육은 독특한 지형을 만들며 변화하고 있다.
이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독일이나 스웨덴의 경우를 들여다보자. 정당과 노조가 시민교육과 성인교육의 중심 주체로서 교육재단과 교육단체로 자리하고, 정부는 재정과 제도를 지원하되 교육을 통제하지 않고 시민교육은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정부, 정당, 노조는 물론 지자체 역시 시민교육, 시민대학을 다양한 차원에서 진행한다. 민주주의의 발전양상과 수준에 따라, 학교 교육과 성인교육, 그리고 언론에서 시민성을 기본가치로 하는 시민교육이 구현된다. 그리고 정당, 노조, 지자체, 시민단체들이 어우러져 각기 자신의 교육 공간과 내용, 커뮤니티를 발전시키며 사적 삶, 공적 삶, 정치적 삶의 층위를 발전시킨다. 독일과 스웨덴의 시민교육이 전형이고 이상적이라고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의 시민교육 지형을 이와 비교해 바라보면 좀 더 명확해지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을 기초로 최근 한국의 시민교육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1) 대학부설 평생교육기관, 지자체가 운영하는 평생교육원, 도서관, 박물관, 역사관, 문화시설, 미술관의 교육이 시민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가고 있다. 프로그램 내용도 알차고 정부지원을 받기 때문에 교육비가 무료거나 매우 저렴하다. 교육시설도 매우 안정적이고 훌륭하다.
2) 지역과 마을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배움의 공간이 다양한 형태로 확대되고 있다. 철학, 문학 등 인문학 학습 서클부터 ‘누구나학교’와 ‘민중의 집’ 등 외국어, 사진, 요리 등 시민들이 자신의 능력을 나누는 형식이 시도되고 있다. 풀뿌리 지역 문화와 학습을 매개로 지역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일산의 지혜공유협동조합, 진보적 학자와 연구자들이 만든 인문학협동조합도 등장했다.
3) 워크숍, 캠프, 소풍, 텃밭 가꾸기, 글쓰기, 리빙라이브러리 등 학습자들이 직접 체험하는 교육이 확대되고 있으며, 여기에 문화예술 교육의 중요성과 비중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 정치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교육에도 지식전달형 계몽교육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춤, 노래, 그림, 만들기 등의 방식이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4) 인권, 평화, 역사, 통일 등 특정 이슈 중심의 시민운동단체들이 자신의 조직 활동의 일환으로 시민교육을 하고 있으며, 최근엔 강사양성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5) 진보적 언론기관들이 자신의 광고력, 기획력을 기초로 시민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오마이스쿨은 스타 강사의 교육콘텐츠를 중심으로 온라인 강의에 강점을 보이며 상당한 확장성을 보여주고 있다. 경향시민대학 역시 최근 시민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6) 정치주체 형성을 위한 교육이 새롭게 시도되고 있다. 2013년 가을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등 몇몇 시민단체 운동가들이 생활정치의 구체적인 방법을 체득해 주민이 정치의 주체가 되자는 목표 아래 <동네정치,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꼼지락! '신나는 정치학교'>을 진행했다. 정치리더 양성을 목표로 한 정치발전소는 <최장집 교수의 정치철학> 강의와 국회 보좌진 양성 스쿨인 <세상을 바꾸는 보좌관>, 지방선거에 도전하는 출마자와 참모를 위한 <손에 잡히는 선거>, <사회복지사를 위한 정치교실>을 열었다. 사회민주주의센터는 2012년부터 한국형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정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현재 시민교육은 주체 내용 방법 면에서 대단히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발전하고 있지만, 오랜 반복과정을 통해 안정화된 시민교육브랜드로 정착된 곳은 많지 않다. 그러면 이러한 지형변화 속에서 참여연대의 시민교육은 무엇을 목표로 어떤 활동을 해왔으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
2. 참여연대 시민교육 평가
참여사회아카데미(1996~2002)
1994년 창립한 참여연대는 시민들과 함께하는 시민운동을 위해 참여연대의 전문적 활동내용을 시민교육으로 전환하고, 창립 초기 참여연대의 협소한 대중적 기반을 넓히기 위해 1996년 참여사회아카데미를 시작했다. 2002년 총 19기까지의 참여사회아카데미는 참여연대 운동의 지지기반 확장, 회원 확대를 목표로 했다. 참여연대 활동을 직접 소개하거나 시민운동과 시민사회와 관련된 강좌가 60%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교육을 통해 참여연대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홍보하는 동시에 참여연대의 대중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참여사회아카데미는 2002년 수강생이 줄어들면서 문을 닫는다. 당시 인터넷 매체가 활성화되면서 시민학습의 환경이 급변하였고, 관련 주제가 비슷한 형태로 한겨레문화센터 등 다양한 곳에서 개설된 것, NGO관련 학과 및 대학원의 설립 등도 영향을 주었다. 외적 환경변화에 대응할 만한 내부의 전문성 부족도 작용했다.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2009~현재)
그 후 참여연대는 시민참여, 사회교육강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그 결과 2008년부터 점차 시민교육을 확대하였고, 2009년 <앎의 즐거움, 모든 변화의 첫걸음입니다>, <진보·인문·행복>을 모토로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를 새롭게 오픈한다.
느티나무는 주요 참여자로 다음과 같은 시민을 설정하고 출발했다. 이 시대를 사는 시민들은 어떤 삶과 배움의 요구를 가지고 있는가. 이들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소비와 욕망의 노예가 된 듯 살아가지만, 그 내면엔 인간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는 즐거운 삶을 희망한다. 과거에 비해 개인적, 공공적, 정치적 요구와 취향이 훨씬 더 다양하다. 민주주의 가치를 위한 시민의식이 강한 사람도 사회적 자아 못지않게 개인적 자아의 성장을 희망한다. 배움을 통해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삶이 변화하기를 희망한다. 민주주의 시민의식을 위해 비판적이고 주체적인 사고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정책과 지식을 문자적 지성으로만 한정했을 때는 힘이 약하다. 지성에 감성과 사회적 영성이 뒷받침된 통합적이고 균형 있는 시민이 필요하다.
“자신의 경험을 객관화하고, 자신과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과 생각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스스로 사고할 줄 아는 시민, 작은 차이를 넘어서 큰 연대를 구상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진 시민, 말보다는 행동을 앞세우되, 행동에 앞서서 학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시민, 냉철한 이성만큼이나 따뜻한 가슴으로 시대의 어려움에 공감할 수 있는 시민, 역사의식과 민주주의를 삶의 현실에서 고민하고 해결해나가려 노력하는 시민을 이 시대는 필요로 합니다.”(느티나무 사업계획 자료)
이에 따라 느티나무는 다음과 같이 교육목표와 방향을 설정하였다. “첫째, 진보 인문 행복의 배움터로 사회와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교육. 둘째, 지성 감성 영성의 통합을 통해 실천하고 변화하는 교육. 셋째, 강사 참여자 기획자가 배움의 주체로 서로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교육.”
“모든 시민은 교사다, 모든 시민은 예술가다. 모든 시민은 정치가다.”
느티나무는 매년 봄 학기와 가을 학기 각각 20여 개, 여름 학기와 겨울 학기 3~7개의 강좌를 운영했다. 2013년 12월 현재까지 총 203개의 강좌를 진행했다. 5년 동안 총 4,800여 명의 시민과 260여 명의 강사가 참여했다.
느티나무 교육은 크게 민주주의학교, 인문학교, 생활문화, 자아탐색 5종 세트로 나눠진다. 첫째, 민주주의의 주체들이 이론적인 바탕위에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인 <민주주의학교>. 이는 민주주의와 정치, 경제, 평화, 복지, 국제연대에 대해 참여연대 각 센터들이 주관하는 강좌와 느티나무 실무진이 주관하는 민주주의, 정치, 경제 강좌와 민주주의에 관한 고전인문강좌, 그리고 민주적 진행자워크숍과 같은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구분할 수 있다.
둘째, 이 사회와 세계, 그리고 시민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문학교>는 인문학을 위한 인문학이나 지적 소비를 위한 인문학이 아니다. 문학, 역사, 철학은 물론이고 종교, 돈, 집, 도시와 공간, 에로스 등 다양한 주제를 포괄한다. <문학으로 보는 이슬람사회와 문화> 등 문학 고전 읽기, <이슬람의 이해>, <세계 종교의 이해>, <혁명과 헌법의 인문학>, <생애의 발견> 그리고 <공동체, 그 매력과 두려움>은 느티나무 인문학교의 성격을 말해준다. <교과서 저자와 함께 하는 한국근현대사>는 총 3년 동안 반복 개설한 대표강좌다.
셋째, 서울골목 현장에 나가 그림을 그리는 <서울드로잉>, 나의 예술성을 표현하는 <창작 일러스트>, <쉽게 즐기는 우쿨렐레교실>, <자신에게 사진을 건네다> 등 생활 문화 분야에서는 사회에 대한 공감대가 있는 참여자와 강사들이 모여 일반 문화센터 예술 강좌와는 구별되는 참여연대 느티나무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넷째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내 안의 의사만나기 워크숍>, 꿈 분석을 통해 내면의 소리를 경청하는 <꿈 워크숍>, 옷과 몸을 통해 자아를 탐색하는 <스타일링 워크숍>과 <몸 워크숍>, 그리고 인문학 <삶의 길목에서 만난 신화> 등 이른바 느티나무의 자아탐색 5종 세트는 개인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의 균형있는 확장을 목표로 한다.
그밖에 <참여연대 토크쇼>, <오픈특강> 그리고 참여자가 자신의 경험과 콘텐츠를 함께 나누는 <나도 강사다>를 비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생활정치, 나도 할 수 있다고>, <한나 아렌트와 철학하기>는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하여 교육방식의 다원화를 시도하고 있다.
대상별 교육도 점차 확대하고 있다. 지난 2013 겨울부터 방학에 “참여하는 청소년, 삶의 주체로서의 청소년, 자의식과 사회의식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청소년”을 목표로 <1518 청소년 워크숍 - 나를 만지다>를 진행하고 있다.
느티나무 5년, 그 개선방향에 대하여
민주주의학교는 참여연대의 정체성과 관련해 그 비중이 중요한 만큼, 현재 가장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참여연대 내부에서는 “시민들이 참여연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소통하는 교육”, “참여연대 운동을 시민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며, “느티나무의 교육실무팀이 민주주의학교의 대표 교육 콘텐츠 개발을 더욱 강화하고 각 센터의 교육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주도해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가 있다.
참여자들은 “강사의 전문성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교육내용이 너무 거대담론이고 나의 삶과 연결되는 지점을 찾기 어려워 내가 꼭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강의 분위기가 너무 무겁고 진지하다”, “대화나 토론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느티나무는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진행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철학과 함께 하는 민주적 진행자 워크숍>은 참여자, 강사, 기획자 모두가 배움의 주체가 되는 “서로 배움의 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세상을 향해 내 생각을 말과 몸짓으로 표현해보는 <소심한 사람들의 유쾌한 꼼지락 : 소리를 내면 세상이 바뀐다>, 조별토론을 강화한 <나의 시민정치학교1, 2>, 인문학, 평화학, 페다고지를 결합해 즐겁게 배우는 <평화교육 워크숍 - 누구나 맘대로 톡톡> 등을 진행한 바 있다. 이런 노력을 토대로 참여연대의 특성이 잘 살아있으면서도 시민들의 삶에 밀착된 교육내용과 방법을 개발해 대표 강좌로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현재 느티나무 민주주의 학교의 과제다.
인문학교, 생활문화, 자아탐색 5종 세트에 대해서는 두 가지 반응이 존재한다. “참여연대에서 조직의 정체성에 맞지 않게 왜 이런 프로그램에 노력을 기울이느냐”는 평가, 그리고 반대로 “참여연대의 인문학교실, 자아탐색 5종 세트는 특별한 자기만의 색깔이 있다,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참신한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참여연대에 대한 시민들의 접점을 넓혔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다.
“느티나무만의 강점은 배움의 문화가 잡혀 있다는 것이다. 느티나무에는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학습자가 있고, 교육 콘텐츠에 비전이 있고, 참여연대 칼라가 있다.” (강사)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며 살아 숨 쉬는 캐릭터로 만나는 느티나무의 문학 읽기에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덕분에 2년 전부터 친구들을 한 달에 한 번 집으로 초대해 함께 밥도 만들어 먹고 남편, 아들과 함께 문학 토론 모임도 하고 있다.” (시민단체 활동가)
“참여연대에 늘 취재를 다녔지만 내가 함께 할 것은 없었다. 그런데 참여연대에서 우쿨렐레를 한다니 의외였지만, 신뢰하는 참여연대라 망설임 없이 참여했다. 강좌가 끝나고 나서 참여자들끼리 소모임을 만들어 인생의 새로운 재미가 생겼다.” (기자)
이러한 느티나무 5년의 진행과정과 평가를 토대로 시민교육에 대한 쟁점과 과제를 생각해보자.
3. 시민교육의 쟁점과 과제 -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시민운동과 시민교육의 만남
시민운동과 시민교육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시민단체에서 하는 시민교육은 단체의 목적과 무관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목적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시민단체의 교육은 생명력이 짧을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그 정책에 동의해 행사와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이것은 교육에도 적용된다. 시민단체의 시민교육이 그 단체의 정체성을 무시하고 진행해서는 안 되지만, 그 정체성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설정해서도 안 된다. 특히 참여연대와 같이 한국 사회와 세계의 평화, 민주주의, 복지,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단체는 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시민단체의 교육은 그 단체의 운동에 대한 시민과 회원들의 이해를 높여 더욱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기엔 균형이 필요하다. 그 단체가 지향하는 정책이 시민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하루하루 바쁘게 살면서도 어떤 실천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함께 상상하고 만들어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운동의 근저를 이루는 비판적 사고와 성찰의 힘이 성장한다면, 그것은 그 운동과 정책을 위해 근육을 만드는 것이고 건강한 피가 돌게 하는 것이다.
동시에 시민단체의 교육에는 그 운동에 대한 큰 비전과 실천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느티나무는 참여연대회원의 정체성 형성을 위한 교육, 참여민주주의와 시민행동과 같은 시민실천가 교육, 잠재적 활동가를 발굴하고 기성 활동가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심화교육과정, 한국정치 경제 복지 평화에 관한 참여연대의 대표 시민강좌를 추진함과 동시에, 전문가와 활동가가 구체적 목표의식을 가지고 독서서클에서 학습하는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다만 이런 교육들이 과거의 의식화교육의 패턴을 반복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말고, 실패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 연구하고 개선하는 집요함도 필요하다. 몇몇 시민단체들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좀더 체계화된 시민대학을 구상해볼 수도 있다.
운동의 근저를 이루는 비판적 사고와 성찰을 위한 시민교육과 활동력 강화를 위한 교육 사이의 긴장과 균형. 이것은 시민단체의 시민교육이 창조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시민교육의 가치, 내용, 방법
배움의 장에서 각 교육의 주체가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 어떤 배움의 철학과 가치를 두고 있는가. 이것은 배움의 방법과 무관할 수 없다. 배움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은 단지 기술이 아닌, 가치와 철학이 반영된다. 느티나무는 배움을 매개로 참여자, 강사, 시민이 만나고 서로 배우는 공간을 목표로 한다. 물론 모든 배움에 참여형 교육방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강의만 듣고 자리를 뜨는 것도 의미가 있다. 다만 새로운 지식과 사고를 중심으로 하는 강의식 교육이라 하더라도 최대한 효과적인 소통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그 배움을 통해 어떤 새로운 질문을 갖게 되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표현하고 듣는 경험은 배움의 에너지를 확 바꿔놓는다.
느티나무는 지난 5년간 이러한 분위기를 키워나가는 데 노력했다. 강의식 수업에서도 시작할 때, 참여자 각자가 강의를 듣는 목표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짧게라도 배치한다. 때로는 열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강의와 연관된 시와 음악을 나누기도 한다. 30명 넘는 강의실 안에서 형식적인 질문시간이 되지 않도록 10분 동안 옆 사람과 2인 1조 또는 4인 1조로 대화하며 생각을 나누고 때로는 20분 동안 조별로 테이블 토크를 한다. 마지막 시간에 워크숍을 도입해 몇 회의 배움을 통해 어떤 성찰을 하게 되었는지, 어떤 실천을 할 수 있는지 토론한다. 이런 방식에 대해서 많은 참여자가 거부감과 두려움이 있고 때로는 강사가 불편해하기도 한다. 한국의 제도교육과 사회의 문화가 자신의 생각을 질문하고 토론하는 것을 억압해왔기 때문이다.
동시에 분야별로 진행해온 교육을 하나의 강좌 안에서 통합적으로 시도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 민주주의학교 안에서도 예술적 방법을 결합할 수 있고, 문화예술 교육 안에서도 그와 관련한 철학과 역사를 공부할 수 있다. 함께 대본을 만들어 연극을 하고, 가사를 함께 고민해 노래를 만들거나, 함께 만화와 벽화를 만들 수도 있다. 즐겁게 회의하기, 재미있게 시위하기 프로그램도 연구해볼 계획이다.
배움, 공간, 관계
유명한 강사에 강의제목이 매력적이면 사람들이 많이 온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일 뿐이다. 시민단체 시민교육의 공간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이상으로 어떤 배움의 관계가 맺어지는가가 중요하다. 느티나무 참여자와 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에게 느티나무는 숨통이 트이고 안도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답답한 현실이 바뀌지 않아도 함께 얘기할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안전한 방공호나 플랫폼에 있는 것 같다.” (직장인)
“참여연대가 정부의 천안함 사건 발표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고 가스통 할아버지들이 공격을 할 때 참여연대 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전부터 늘 하고 싶었던 사진수업에 참여했다. 그 후 <역사교과서> 강좌에도 참여했다. 그 강의에서 만난 사람들과 역사답사소모임을 함께하고 있다.” (전직 노동운동가)
“느티나무의 매력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점이다. 강사뿐 아니라 참여자들 서로에게 배우는 게 많다. 정말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재개발로 반이 무너진 북아현동 골목길에서 그곳 사람들의 삶을 소중하게 그리는 이들을 보며 마음이 따뜻했던 기억이 있다. 함께 집회에도 참여하며 스스로 흐뭇했다. 다른 곳에서 그림을 배워보기도 했지만 느티나무와 같은 멤버십은 없었다. 수업 이후엔 학교에서 아이들을 상담한 후 캐리커쳐를 그려주고 있다. 아이와 눈을 맞추며 그림을 그려주는 그 시간이 큰 즐거움이다.“ (교사)
“참여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강의의 질과 내용이 달라진다. 눈을 맞추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 강의실 안에서 불꽃이 일어나는 느낌이다.” (강사)
이렇듯 배움을 통해 맺어지는 친밀하고 안전한 공적 관계는 시민단체에 건강한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한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은 민주주의를 튼튼하게 한다. 나이와 배경과 견해가 다른 낯선 사람들에게 환대를 베풀고 다양성의 긴장에 친숙해지고 그것을 두려워하기보다 배움과 삶의 한 가지 통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은 공적인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공적인 삶의 층위는 개인적인 삶과 정치적인 삶의 층위 사이의 완충지대로, 그것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결코 지탱될 수 없다. 그러기 위해 낯선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자유롭게 섞일 수 있는 곳,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욱 유쾌하고 강인해지고 튼튼해질 수 있고, 그래서 우리 사이에 사회적 정치적 유대가 생겨나는 곳이 필요하다. 이 장소에서 시민들은 위엄, 독립성, 비전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고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어울리며 구현되는 시민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시민의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다.”(파커 파머 2012)
이러한 관점에서 시민단체의 교육이 그 정체성에 맞는 교육인가를 질문할 때, 그 시야가 좀 더 넓어져야 한다. 시민교육이 그 단체와 조직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하는 조급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배움의 공간에 참여한 시민들이 삶의 스토리로 만날 때 그 배움의 공간은 즐거운 시민들의 놀이터와 아지트가 된다. 그 스토리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을 어떻게 잘 만드는가, 이것은 하나의 무대에 관객, 배우, 연출자가 함께 행위자가 되어 만들어내는 종합예술이다.
시민참여에 대한 상상력
시민참여에 대해서도 열린 상상력이 필요하다. “시민교육이 배출하는 중간 리더는 스스로의 삶을 대자적 위치로, 그리고 사적 영역을 공적 영역으로 전환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대중이 중간리더십을 가지게 되는 정도만큼 시민사회는 성숙하며, 이들은 자신의 생활의 장을 역동적 자율성의 공간으로 바꿔내는 동시에 학습의 파장을 일으킨다. 학습자들이 교육에 참여했을 때 그리고 교육이 끝난 후에 시민사회네트워크의 일정부분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한숭희 2002).
그동안 느티나무에서 공부한 시민 중 일부는 참여연대 운영위원, 자원활동가로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느티나무에는 느티나무 교육의 방향에 공감하는 적극적인 참여자들이 함께 하는 ‘느티나무지기’ 모임이 있다. 2011년부터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강의 기획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교육평가 모니터를 하고, 청소년워크숍 등 새로운 분야의 기획을 주도하고 있다. 봄·가을 학기 종강파티는 느티나무지기들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다. 참여자들로 구성된 기자단은 지금까지 참여자, 강사, 상근자들 총 서른 명을 인터뷰하여 느티나무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다. 배움의 공간 안에서 따뜻하고 열린 대화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강좌지기를 맡아 실무진과 함께 호흡을 맞추기도 한다.
소모임 ‘그림者’는 <서울드로잉>과 <창작일러스트> 후속 모임으로 <지진피해 일본 어린이, 조선학교 돕기 그림전> 경매행사 등 몇 차례의 그룹전시회를 했다. 2013년 봄에는 이문동 독구말에서 컨테이너에 그림을 그려 도서관을 만들기도 했다. 가을에는 참여자들이 함께 그 지역을 그리고 주민들을 위한 전시회를 열었다. 이것은 그림자의 한 참여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따뜻한 분위기로 만들고 싶다는 제안에 다른 그림자 회원들이 동참한 것이다.
<교과서저자와 함께 하는 한국근현대사> 강좌에 함께 한 참여자들로 이뤄진 ‘역사답사모임’은 스스로 답사장소를 정하고 자신이 공부해 발표를 준비한다. 답사가 끝나고 몇 차례 주말 촛불집회에 함께 했다. 지난 11월 9일 ‘민주주의 되찾기 참여연대 거리행진’에는 강좌의 정기답사가 끝나고 참여자들이 다수 참여했다.
이 소모임은 참여연대 활동과 직접 관련이 없지만 자신들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자발적 모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과거 참여연대 초기 참여사회아카데미에서 강좌가 끝나고 만들어진 ‘정의로운 법을 지키는 사람들’과 ‘통일일꾼모임’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아직 시작의 단계일 뿐 앞으로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 잘 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그러나 시민들이 자신들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공적인 차원에서 만남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소중한 참여이고 실천이다.
동시에 활동가와 잠재적 활동가를 위한 교육이라면, 기수별 모임과 동문회 형식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하려면 교육주체 즉 참여자 강사 기획자의 자발성과 열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배움이 어떻게 삶으로 연결되고 실천과 변화로 이어지는가? 그것은 혼자 개인으로 있을 때 가능하지 않다. 그것을 함께 궁리하고 서로 격려하고 마중물을 부어주고 다지는 과정이 중요하다. 시민단체가 자신의 교육방향, 차별성과 위치에 대해 고민할 때도 이것은 강좌의 커리큘럼 이상으로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아니 이것을 염두에 두지 않은 교육은 공허하다.
시민교육의 전문성과 재정문제
교육의 전문성을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 역시 중요한 지점이다. 한국의 시민운동 역사에 비해 시민교육 전문가들의 경험과 전문성은 대단히 취약하다. “시민운동이 성장하기 위해 시민교육이 중요함을 인정한다면, 시민교육 전문가를 키우는 데 소홀해서는 안 된다. 시민교육을 누가 기획하고 진행하는가는 그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단체에서는 안정적으로 전문성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교육 담당자를 찾기 어렵다. 시민단체의 대표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손꼽기도 쉽지 않다”(한숭희 2002). 느티나무 교육 담당 간사도 지금까지는 2~3년이 최대 근무기간이었다. 교육기획과 진행의 전문적 역량을 강화하려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동시에 시민단체가 정체성에 맞는 시민교육의 가치, 태도, 내용, 방법 등을 통합적으로 발전시키려면 그것을 위한 장기적인 연구팀이 운영되어야 한다.
전문성은 재정문제와 연동된다. 회원의 회비로 운영되는 참여연대는 ‘정부지원금 0%’를 원칙으로 하고 있고 정부 산하기관 교육지원금은 신청하지 않는다. 느티나무 참가비는 일반적인 영리 교육기관에 비해서는 낮지만 지자체 평생교육원, 도서관 등 공공기관 교육프로그램에 비해서는 수강료가 높을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이는 상당한 핸디캡이다. 한편 “자신의 직업과 생활의 이익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시민교육이 근근이 명맥만 유지해도 다행인 현실에서 시민단체가 돈을 들여야 하는 시민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교육 사업에는 돈을 쓰겠다는 조직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한숭희 2002). 이것은 시민단체가 시민교육에 어떤 비중을 두느냐에 달린 문제다. 말로는 시민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교육 사업을 순수익이 얼마인가를 기준으로 바라보면 그것은 이미 시민교육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한편 소수의 공공재단이 시민교육에 지원하는 액수는 너무 제한적이고, 재정이 어려운 수많은 시민교육 단체가 이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벗어나야 한다. 지자체는 직접 자신의 시민대학을 운영하기보다 재단과 기금을 만들어 시민단체 교육을 지원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독일과 스웨덴처럼 정부가 시민교육 기금을 세금으로 지원하면서도 시민교육에 통제를 하지 않도록 독립성을 확보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역행하고 있는 지금은 이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민단체는 독자적인 교육기금을 마련하거나 자신의 재정 가운데 몇 퍼센트는 반드시 교육비로 사용한다는 전향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5. 나가며
시민교육이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참여연대 느티나무 5년을 평가하며 시민교육이 함께 고민해볼 쟁점과 과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앞으로 시민교육의 ‘영향력’을 어떻게 더 확대할 것인가. 참여연대 느티나무는 시민교육의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며 발전할 것인가. 참여자 강사 기획자들과 함께 지난 5년 동안 성장해온 느티나무는 2014년 참여연대 20주년을 맞이해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다. 이 길에 여러분의 즐거운 참여를 기대한다.
위에 글은 참여사회연구소 반년간지 《시민과 세계》24호에 실린 원고입니다. 아카데미 느티나무 참여자, 강사 그리고 시민교육에 관심을 가진 모든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첨부한 PDF 파일에는 분량상 제외한 각종 도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느티나무와 함께 했던 지난 5년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확 ~~ 지나갔다. 글을 읽으면서...
교육의 객체와 어느정도의 주체로써 보낸 시간들이 나의 사고의 틀을 넓혀주었다.
그러나 어느날 문득 나도 아카데미도 타성에 젖어 멈춘듯했다.
이런 성찰과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은 아카데미와 함께한 시간 덕분에 할 수 있는 자각이다.
시민교육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다듬어가다보면 느리지만 거꾸로 가고 있는 민주주의 시계를 되돌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잘하고 있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어' 라기 보다는
"나는 잘하고 있는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라고 나에게, 서로에게 묻는다면...
오...
분석하고 평가하여 쟁점과 과제를 정리해야 하는 이런 글에서
잔잔하지만 결국 큰 물결이 되어 출렁이듯 다가오는 행복감을 느끼게 되다니 스스로 놀랐습니다.
고맙습니다.
자기 삶과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 끊임없이 배움을 추구하려는 지금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명확히 짚어 내어 정리해주시니
지금 시점에서 느티나무가 고민하는 지점들이 자연스러우면서 매우 힘이 있는 흐름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제도적, 문화적인 방향들도 크게 동의가 됩니다.
무엇보다 지난 5년간 참여자로서 강좌를 모니터링하고 직접 기획, 진행해 온 '느티나무 지기' 모임이
이 글을 읽으니 새삼 시민교육 분야에서 굉장히 실험적인데 놀랍도록 안정적이고 진보한 모델인 것 같아 뿌듯해집니다.
5년 동안 그러했듯이, 2014년 올해도 느티나무 안에서 즐겁고 알차게 성장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