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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편지] 10월의 마지막 밤, 정년퇴직해요
얼마 전 저에게 선물처럼 다가온 꿈이 있습니다.
“작은 화분 하나를 내가 돌보고 있다. 키가 50센티나 될 듯한 작은 나무. 위쪽으로 새로 연녹색 이파리들이 올라오고 있다. 아래쪽엔 시들한 잎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나는 아래쪽 잎을 가위로 잘라냈다. 개운하다.”
1. 12년 전
2008년 12월 참여연대에 출근하여 2009년 느티나무 봄학기를 준비할 때가 생각납니다. 그땐 매일매일 몇 분이 신청했나 숫자를 세며 마음을 조렸어요. 잠을 못잘 정도였어요. 그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함께 하는 활동가, 강사, 참여자들 모두 함께 만들어가는 거다. 무엇보다 이 시대 시민들이 이 배움의 공간을 즐겁게 만들어 갈 것이다. 노심초사하는 마음 내려놓자.”
이 생각은 12년 동안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일하는 내내 저에게 자극과 힘이 되었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함께 했던 활동가, 강사, 참여자들이 고비고비 해결을 해주었고 덕분에 느티나무가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 정년퇴직 이후
많은 분들이 묻습니다. “정년퇴직하면 어떻게 지내시나요?”
참여연대 회원들에게 정년퇴직이 없듯이 저는 이 사회의 변화와 저의 성장을 위한 삶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참여연대 회원으로서 시민교육기획자로서의 정체성도 변함이 없습니다. 일정 기간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 운영위원으로, 또 느티나무 소모임 구성원으로 함께 합니다.
느티나무는 저에게 직장이나 일터만이 아닙니다. 일, 배움, 놀이가 함께 하는 곳이었고, 이곳에서 스승과 친구를 만났습니다.
정년퇴직은 단지 사회가 그어놓은 선에 불과합니다. 그 선을 넘었다고 느티나무에서의 소중한 스승과 친구들의 관계가 한순간에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물론 변화가 있겠지요. 느티나무의 울타리를 넘어 저의 삶이 확장되길 희망하고 있거든요. 하고 싶은 게 많습니다.^^
3. 새로운 변화를 위하여
앞에서 꿈 얘기를 했는데요.
“내가 잘라낸 건 무엇이고 새로 피어나는 잎은 무엇일까. 느티나무는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더 키워야 하는가. 나 개인적으로는 무엇을 자르고 더 키워야 할까. 나에게 어떤 변화의 문이 열리게 될까.”
그 불확실함에 약간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있습니다.
“무엇이든 즐겁게 맞이한다. 나에겐 힘이 있다.”
지금의 홀가분한 자신감, 이것은 그동안 여러분과 나눴던 신뢰와 애정 덕분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배움의 환경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이 어려운 상황에 참여연대와 느티나무가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습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많이 부족한 사람이 느티나무에서 일하면서, 여러분께 많이 배웠고, 참 행복했고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느티나무는 ‘나의 다순구미 마을’입니다. (다순구미. 따뜻하고 양지바르다는 뜻.)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2020. 10. 22 주은경 아카데미느티나무 원장 드림
* 주은경 첫 그림전<나의 다순구미 마을>소식(~10/30)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