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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연극하기 좋은 날씨였다." 낭독연극 워크숍 후기. 우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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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토) 11:00 왜 연극을 하려고 하나요?
낭독연극 워크숍 발표날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워크숍의 첫 날을 떠올린다.
5월 13일, 참여연대 지하 1층 느티나무 홀에 열일곱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나를 더 잘 표현하고 싶어서” “나를 더 잘 알고 싶어서” “타인의 삶에 공감하고 싶어서” “실용적인 목적으로” 등등,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 연극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란 것.
나는 “즐거움을 찾아서” 워크숍에 참여했다. 어릴 적 학교 수업시간에 교과서에 실린 희곡을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연기하듯 읽던 순간의 짜릿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그 순간의 느낌을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경험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 신청했고, 열일곱 명의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앞쪽에는 워크숍을 진행하는 남동훈 연출님이 있다.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연극을 꾸리는 시민 연극단을 이끈 경험이 여러 번 있는 분이라고 한다. 연출님은 내내 웃음 띤 얼굴과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앞으로 워크숍이 어떻게 진행될지 안내했다. 그동안 많은 일이 벌어져서 그런가. 불과 한 달 전의 일인데 오래 전처럼 느껴진다.
6.20.(토) 12:00 민중의 연속극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집밖으로 나설 채비를 한다. 가방 안에 헨릭 입센의 ‘민중의 적’과 김은성 작가의 ‘달나라 연속극’ 책을 넣었다. 낭독연극 워크숍의 교재들이다. 첫 수업시간이 끝나고, 연출님이 알려준 대로 한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마지막까지 대본을 읽어나갔다. 연극 대본을 읽는 게 얼마만일까. 생각만큼 장면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다음 시간부터 참가자들끼리 돌아가면서 대본을 읽어나갔다. 등장인물의 대사를 읽는 게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짧은 대사에 감정을 싣는 연습을 했다. 연출님은 대사 표현, 행동, 전사(前史) 파악 등 연기이론을 설명하며 초보 연기자들을 이끌었다.
두 대본 중 연기하고 싶은 배역과 장면을 선택해야 한다. 나는 ‘민중의 적’ 중 ‘시장’ 역할을 골랐다. 정의감 넘치는 주인공 ‘스토크만’ 대신 노회하고 야심 가득한 시장 역할을 선택한 데는,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배역과 다른 역할을 맡아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나의 파트너는 시장 역할을 담당한 00쌤. 우리는 ‘민중의 적’ 4막에서 형과 동생이 대립하는 장면을 연기했다. 처음에는 겨우 대본을 따라 읽는 데 그쳤지만 차차 상대방의 연기에 감응하며 몸을 움직였다. 나는 “그 짓을 하고서도 나한테 원칙을 들먹여”란 대사를 할 때 가장 통쾌했고, 00쌤은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시오”라는 대사를 진정성(?)이 느껴지도록 읊었다. 열일곱 명의 참가자 중에는 ‘시장’ ‘스토크만’ 외에 ‘홉스타드’ ‘아스락슨’ ‘카트린’ ‘만자’ ‘은창’ ‘은영’ ‘미영’이 있었다. 연습 시간 동안 이들이 벌이는 ‘민중의 연속극’이 참여연대 건물에서 수도 없이 상연되고 끝마치고 다시 막이 올랐다.
6.20.(토) 12:20 마스크를 쓴 사람들
지하철에 탔다. 사람들이 죄다 마스크를 쓰고 있다. 올 초에는 상상하지 못하던 모습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워크숍이 중간에 위기(?)를 맞았다. 5월 말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될 기미를 보이자, 정부에서 2주간 행사 및 모임 참가 자제를 권고한 것. 덕분에 워크숍도 1주일 이상 뒤로 미뤄졌다. 발표를 앞두고 한창 분위기를 탈 때쯤에 일어난 일이라 아쉬웠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불확실한 코로나19 시대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법. 잠시 쉬는 기간 동안 대본 읽기를 연습한 후 2주 뒤 다시 모였다. 더 넓은 공간에서 참가자끼리 거리를 두고, 마스크를 꼭 착용한 채 연습에 임했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없는 집에서도 대사를 완전히 외우는 걸 목표로 대본을 읽으며 연습했다. 연극이나 영화에서 배우들이 긴 대사를 다 외워 연기하는 걸 보고 신기했는데, 나도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비록 한 장면이지만 말이다. 이 대사를 할 때 인물의 감정은 어떨까. 이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금씩 인물의 마음에 가까워진다.
6.20.(토) 12:40 연극하기 좋은 날씨
시청역 8번 출구. 이 곳에서 참여연대에 가는 마을버스를 타야 한다. 워크숍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주말에도 참여해야 할 때가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토요일 점심 무렵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바라본 풍경이 보기 좋았다. 오늘 또한 그렇다. 이 날의 햇살, 바람, 풍경이 마음에 든다.
핸드폰을 열고 연출님이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 남긴 메시지를 읽어 본다. 연출님의 말씀대로 “각자의 인생에서 단 한 번 밖에 없는 공연”이 시작되려 한다. 마침 “연극하기 좋은” 날씨다.
참. ‘낭독연극 워크숍’ 이후에는 ‘대본창작 과정’이 진행된다고 하던데, 어떤 내용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