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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창조성 놀이학교가 열리는 공간 ‘감우산방’... 그 곳에서 여신들의 광란의 축제가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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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에 우연히 잘못 배달된 참여연대 책자 ‘참여사회’에 소개된 “창조성 놀이학교” 강좌를 보고 바로 메일로 문의를 했다. 입모양을 보고 소통이 가능한 청각장애인인데 참여가 가능하냐?... 그에 대한 답은 말하기를 통해 이뤄지는 소통이 주인데 거기에서 내가 소외될까봐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강좌에서 소외될 수 있는 부분은 나의 장애로 인해 생기는 어쩔수 없는 부분이고 대신 내가 미리 책을 읽고 따라갈 수 있는 만큼만 해도 괜찮으니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낯설지만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었다.
김 혜련의 <밥하는 시간> 이라는 책을 함께 읽고 서로의 생각을 말하면서 아픔과 슬픔의 추억을 함께 공감하고, 정성껏 준비해온 건강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먹는 시간도 있고, 조각천을 함께 맞추고 이어가며 이불도 만들었다. 내가 우왕좌왕하면 슬쩍 내미는 손길에 다시금 제자리로 와서 같이 시작하는 등...이런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사람들의 따뜻함을 온 몸으로 느끼며 보이지 않는 진정어린 지지와 힘을 얻었다.
올해 봄학기 강좌가 시작되길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모든 일상이 멈춰지면서 입모양으로 소통하는 나에게는 마스크로 사람들과의 소통이 차단 되면서 본의 아니게 고립될 수 밖에 없었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귀찮음, 짜증스러운 표정, 무시하고픈, 어디서나 환영받지 못함을 느껴질 때마다 말하는 법은 잊혀지고 눈치로 생존법을 찾아야 했다. 누군가를 원망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모두가 살고자 하는 것이려니 하고 이해하려고 했지만 지쳐가던 중이었다.
드디어 연기 되었던 느티나무의 “창조성 놀이학교”가 시작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어 생활방역으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상황들은 몇날 며칠을 잠 못이루게 했다. 간단한 기본적인 소통조차도 애먹고 있는데,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는 소통으로 진행하는 감우산방 방식에 과연 내가 할 수 있을지, 얘기할 때 만이라도 잠깐 마스크를 내린다면... 그 또한 벗님들을 위험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는 부담감에 결국 나 한사람만 빠지면 해결되니 포기하려던 참에 재미란 선생님의 카톡 답이 왔다.
감우산방의 진행은 서로 서로 지도하는 방식, 한 사람에게 집중해서 강의하는 것이 아니죠.
모두의 발언이 중한 서클방식에서 쌤과 소통을 위해서만 마스크를 벗게 되는 것은 아니죠..
하하! 진짜 웃음이 나왔다.
나를 위한, 나를 위하여라는 말도 없었다. 나 때문에 감우산방 벗님들을 힘들게 할까 하는 생각은 오버하지 않았나 싶다. 감우산방의 벗님들의 “함께 하는 힘”의 위력을 잊고 있었다.
마스크때문에 벗님들을 못 따라간다 해도 내가 누구던가? 눈치밥으로 먹고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이까짓꺼 못하겠어? 눈치껏 해보기로 결심했다.
감우산방의 여신들은 상상 외로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한 줄의 완성된 문장이 아닌 단어 하나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했다. 책이 있고 프린터물이 있고 종이와 볼펜이 있고 애정어린 벗님들의 눈길 덕분에 나는 눈치도 안보고 여신들의 축제를 맘껏 즐겼다. 매주 수요일, 감우산방으로 가는 길은 즐거웠다.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관점들을 알아가고 시야가 넓어지는 듯했다.
조제프 캠벨의 < 여신들 >을 읽으며 잊혀진 여신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죽음과 재생’이라는 주제로 밀랍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함께 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 내면의 파장은 점점 퍼져갔다. 죽음은 그저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고 재생 역시 단순한 재생이 아니었다.
여신은 우물 안의 개구리인 나에게 자잘한 돌멩이를 마구 마구 던지더니, 기어코 커다란 바위덩어리를 던진다. 피할 틈도 주지 않았다. 결국 상처를 숨기며 괜찮아요, 괜찮아! 하던 내 입에서 결국 “아파요” 라는 말을 나오게 했다.
교착점, 충격, 잔인한 폭력과 파괴, 질문, 성배, 인간에 대한 연민, 물 위를 뛰어오르는 물고기....
내 안에 숨어 있던 아픔들은 회오리치는 듯이 돌고 돌았다. 뭔가라도 잡고 있어야 해서 잡았던 철사는 뱀이 되고 메두사가 되어 다른 여신들과 광란의 축제를 즐겼다.
▲ 뱀이 되고 메두사가 되어...
나를 아프게 했지만 여전히 예쁜 여신, 행복한 단어인 내 짝, 내 짝이 되어준 여신과 함께 어울렸다. 생목소리로 들려주는 시 낭송과 떠나간 고인을 염원하는 소리에서 인간의 목소리도 감정을 담아낼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여신들, 매 순간을 담아내려는 여신, 언제나 정정한 모습으로 모범을 보여 주는 여신, 멀리서 함께 즐기러 와 준 여신들, 함께 하지 못해 더욱 더 그리운 여신들, 그리고 메두사의 눈을 마주치면 슬그머니 마스크를 내리는 여신들의 모습에서 나는, 내가 그토록 부담스러워 했던 “배려”라는 단어를 기쁘게 받아들 수 있게 되었다.
그 많은 여신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러나 여신들은 나에게 삶의 부조리를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나눠주고 갔다.
마지막 남은 소원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었다.
나의 처음은 무엇인가? 나의 처음은 어디일까?
여신들이 나에게 나눠 준 그 힘으로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러 다시 긴 여정을 떠나련다.
감우산방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신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나의 시를 바친다.
▲ 희생과 봉사의 생을 마감한 <평화의 우리집 쉼터> 손영미 소장님을 기리는 제단을 함께 만들었다.
인간들아! 인간들아!
너희들은 왜 나를 싫어 하느냐?
내가 너희들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했느냐? 꽃을 바치라고 했느냐?
그러나!
나는 뱀의 여신!
자타공인된 사랑의 여신이 아니더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인간들아!
평화와 행복이 함께 하기를..
나, 뱀의 여신...
모든 허물을 벗어버리고
억만겁의 시간을 뛰어넘어
또 다른 삶이 주어졌다.
나, 뱀의 여신..
인간의 몸으로 이 따위에 다시 태어난다.
인간의 삶은 고되고, 고되고, 또 고되구나.
한 겁도 되지 않는 찰나.
그러나 얼마나 아름답고 생동감이 넘치는 삶인가..
▲ 뜨거운 밀랍을 손으로 조물조물거려 완성한 부엉이초를 선물 받아 참여연대 사무실 한 켠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