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립니다 l 크고 작은 소식들을 나눕니다
글|시민교육 현장에서 본 ‘공간’, 그리고 ‘관계’
- file_20111206154802.pdf [File Size:720.3KB]
- file_20111206093449.jpg [File Size:31.1KB]
- 관계1.jpg [File Size:26.1KB]
- 관계1_00000.jpg [File Size:14.9KB]
- 관계1_00001.jpg [File Size:21.2KB]
지난해 느티나무는 여러분의 참여 덕분에 튼실히 성장하였습니다. 연간 약 40개 강좌에 1,100명이 참가했고 봄, 가을학기 종강파티 등 새로운 수강생문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2012년에도 느티나무는 여러분이 사랑하는 배움의 공간이 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관련하여 <시민교육>(2011년 12월 발행)에 실린 주은경 부원장의 글을 올립니다. 시민교육의 공간이 배움을 추구하는 분들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하는지, 관계를 통한 배움이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는 글입니다. 그것은 느티나무가 지향하는 방향이기도 합니다. 부족하지만 그 생각의 단초를 나누어볼까요.
시민교육 현장에서 본 ‘공간’, 그리고 ‘관계’
주은경(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부원장)
세상과 내 삶에 대해 극도로 불안할 때, 느티나무는 안도할 수 있는 공간, 방공호에 오는 느낌이었다. 현실은 여전히 답답해도 마음을 나눌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현재의 나를 확인하고 어디로 갈까 지표가 되는 플랫폼에 서 있다는 느낌이었다.
-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수강생들의 이야기-
성공회대학교 사회교육원 5년, 그리고 현재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3년. 그동안 시민교육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배움은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소통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변화하고 실천해나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자신과 사회의 변화를 위해 관계를 맺고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배움과 교육. 이것을 돕는 것이 시민교육 디자이너이자 기획자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스스로 자신의 질문을 키워가고, 그 질문을 나누면서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받고 앎의 변화가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 그런 교육. 그런데 이런 교육은 시민교육 현장에서 잘 이뤄지고 있는가. 내가 하는 교육은 여기에 충실한가.
이에 대해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나는 최근 시민교육 공간에서 이뤄지는 ‘관계’에 주목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인터넷, SNS 등 정보와 소통의 시대에 왜 시간과 돈을 들여 내 발로 강의실을 찾아오는가. 이들은 누구이며, 무엇을 바라는가. 또 교육의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무엇을 목표로 왜 이 일을 하는가. 이들은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 사실 너무나 큰 질문들이지만, 이것을 ‘관계’라는 키워드로 읽어보고 싶었다.
내가 일하는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는 진보적 사회관점과 역사의식을 위한 <민주주의강좌>, <실천적 인문학 강좌> <생활문화강좌>로 크게 나눠진다. 많게는 4-50명, 적게는 15-20명이 참여한다. 수강생 수가 적고 한 강좌의 회수가 길면 질문과 소통의 수준이 깊다. 같이 공부하고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는 삶이 어떻게 변하고 성장하는지 솔직하게 얘기하고 서로 지켜보고 격려한다.
이전에는 “강의는 다 진부하다. 알고 싶으면 혼자 책 보면 되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의를 들으면서 어떤 공간에서 어떤 마음으로 듣느냐에 따라서 공부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과거 나는 지적 호기심 때문에 늘 배고팠다. 늘 부족했다. 그런데 느티나무에서 공부하면서는 스스로 질문을 하게 됐다. “미술사, 철학... 이런 강좌를 쫓아다니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지?” 여기서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는 공부는 내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공부를 통해 내 삶의 문제에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겠구나’ 하는 자각이 왔다. 지금은 훨씬 단순하고 행복해졌다. 따뜻해지고 여유로워졌다.
-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수강생들의 이야기-
나는 이것이 함께 공부하는 ‘관계’의 힘이요,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식 습득양이 많은 강좌의 경우에는 소통이 이뤄지는 관계가 쉽지 않다. 소규모 동아리나 세미나가 아니라 강좌 형식, 아카데미 형식은 어차피 한계가 있으니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교육진행자는 강의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때 우리가 공부하는 목표를 환기하고, 대화를 유도하는 다양한 시도를 한다. 새로운 공간에 낯설고 여러 사람 앞에서 손들고 질문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미리 질문지를 나눠준다. 때로는 2인 1조로 미팅식 대화시간을 주어 강의를 들으며 새로 인식하게 된 지점을 나누도록 한다. 또 몇 명의 서포터를 위촉해서 분위기를 부드럽고 편안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시도에 대해 기회를 마련해줘서 좋다는 반응도 있고, 질문과 대화를 강요받는 느낌이라는 정반대의 피드백을 받기도 한다. 이 역시 관계맺기의 과정이다.
참가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상황과 요구를 모두 존중하는 것이 맞다. 제도교육 내내 주입식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 낯선 공간과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싫고 또 두려운 사람들 모두를 존중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손을 내밀어 그 기회를 마련해주기도 해야 한다. 사실 시민교육 디자이너, 기획자들 역시 사람들이 치고 있는 장벽에 대해 똑같은 두려움이 있고 손을 내밀었을 때 거부당하면 머쓱하기도 하다.
하나의 강좌가 진행되는 교육과 배움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역동은 마치 연극의 세요소처럼 무대 관객 배우가 어울어지는 한판 에너지의 역동과 비슷하다. 똑같은 내용도 누가 기획하고 분위기를 연출하는가, 어떤 사람들이 수강생으로 참여했는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진행자는 그 분위기를 잘 읽어내고 그 흐름을 잘 타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몇가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 교육공간이 어떤 방향을 추구하는지, 어떤 주체가 누구와 함께 어떤 관계를 맺는 공간을 만들고 있는지와 관련된 문제다. 이것에 초점을 두고 몇 개 공부 공간을 ‘관계맺기’의 시선으로 취재해보았다.
<성공회대학교 노동대학>
2000년 3월 문을 연 이래 11년을 이어오는 성공회대학교 사회교육원 노동대학. 노동대학은 1기부터 24기 현재까지 1박2일 또는 강연회 형식의 입학식은 물론 3월부터 6월, 9월부터 11월까지 매주 1회씩 17-20주의 교육과정 가운데 마지막에 수강생 심포지움은 주목할 만하다. 수강생들이 조를 짜서 발표주제를 정하고 함께 자료도 수집하고 발표를 준비해간다. 물론 조 구성원들 가운데는 글쓰기 시간이나 능력 등에서 차이가 있어 몇 사람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있지만, 그래도 시작이후 10년 넘게 이 전통이 유지되는 것은 그 어떤 시민교육에서도 보기 어려운 대단한 힘이다.
노동대학이 이렇듯 안정적인 노동자교육 공간으로 자리하게 된 데는 동문모임 <느티나무>의 힘이 크다. 1기과정을 마친 수강생들이 자발적으로 동문모임을 만들었고, 장학기금을 조성해서 비정규직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해왔다. 물론 노동자교육은 동질성이 강하고 모이면 소통하고 토론하는 데 다른 집단보다 강한 동력이 있다. 하지만 요즘의 노동자는 업종부터 고용형태까지 다종다양하다. 그럼에도 노동대학에서의 동문관계는 특별하다. 노동조합 선거 등을 거치며 같은 조직안에서 속깊이 할 수 없는 얘기도 많다. 오히려 그 다양하고 일정 거리가 있는 다른 노동조합 사람들을 만나면서 더 큰 배움의 기회를 만난다. 평생을 함께 하는 친구를 만난다. 1기부터 현재 24기까지 사람들 사이에 진한 인간적 신뢰관계가 흐른다. 선배들의 삶에서 배우는 것도 많다.
잡지 <건축설계> 편집과 전시기획, 논술강사, 자유기고가였던 뽀스띠노. 박성준 서원지기소년과 함께 길담서원을 대안적인 공부를 하면서 문리를 트이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고 일을 시작했다. 길담서원 카페에는 다양한 공부모임이 있다.
<철학공방>. 8개월 정도 철학강좌를 같이 듣던 사람들 몇몇이 우리 힘으로 공부해보자고 시작했다. 어려울 땐 튜터의 도움을 받자는 계획으로 지난 12월부터 꾸준히 10여명이 모인다. 철학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 2째주에는 튜터가 함께 하며 책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4째주모임에는 자기 얘기를 한다.
<해방일기 공부모임>. 프레시안에 <해방일기>를 연재하는 역사학자 김기협 선생님과 함께 하는 공부모임이다. 6-12명이 참가하는데, 질문과 비판이 풍성하다. 김기협 선생님은 글쓰는 것외에는 사회와 단절하고 살아왔는데 이 모임에서 타인등과의 소통을 통해 자신의 공부가 더욱 깊어지는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
여름부터 하고 있는 경제공부모임은 목콩반(목요일에 공부하는 영어공부모임)에서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원서로 읽다가, 본격적으로 경제공부모임을 해보자는 얘기로 발전했다. 금융쪽 일을 하는 회원 한 분이 홍기빈 선생의 특강을 직접 섭외하고 진행했다.
책읽기 모임 <책여세>는 1달1회 셋째주 수요일, 좋은 책을 선정해서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다. 두달 후의 책까지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회의해서 결정한다.
이 일을 하면서 서원지기 뽀스띠노에겐 어떤 관계의 변화가 있었을까. 과거 인연으로 만난 친구들하고는 대화가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수면밖에서 찰랑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내 이야기를 깊게 하지 못할 때가 많다. 어쩌다 그런 얘기를 하려 하면, 왜 저렇게 심각하지? 하는 반응에 위축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길담에서 만나는 관계는 생각, 고민, 행동에서 공감의 폭이 높다. 과거지향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내 얘기와 내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많다.
<대안연구공동체>
지난 4월, 홍대 근처에 문을 연 인문학 학습공간 대안연구공동체. 주로 강좌 중심으로 봄에 45개 강좌, 여름에 40개 강좌를 열었지만, 각각 17개와 13개가 살아남았다. 신청자가 많으면 15명, 적으면 3-5명. 그래도 폐강하지 않고 진행했다. 강사들에게 수강료로 들어온 전액을 다 드리면서. 그렇게 해도 강좌 끝나면 다 가버리고. 이러다 대안은커녕 월세도 못버티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한겨레신문 저널리즘스쿨이 상당히 인기있다는 얘기를 듣고, 언론사 지망생 10명을 모집했다. 지원서를 받아보니 대부분이 특정보수신문 지망생이었다. 돈은 되겠지만 이런 걸 하려 한 건 아니다 생각해서 아예 접어버렸다.
그러다 주목한 것이 동아리형식의 공부모임이다. 7월부터 매주 1회 월 4회 <분노하라> 불어강독을 시작했다. 카페와 페이스북으로만 홍보했는데 많은 사람이 모였다. 강좌는 수직적인데 비해, 공부동아리는 수평적이고 자발성있는 네트워크라는 점에서 힘이 있다. <르몽드> 불어로 읽기반도 시작했다. 그밖에도 많은 공부동아리가 무료멘토들과 함께 진행된다. 참가비는 월 3만원. 공부의 댓가가 아니라 이 공간을 유지한다는 의미다. 동아리마다 그 안에서 총무를 정하는데, 정말 그 공부를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따라 총무의 활동력이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동아리는 회비 걷기가 어렵다.
대안연구공동체의 김종락 대표는 문화일보 문화부장을 지낸 20년 경력의 기자출신이다. 임대료 고민에 CMS 등 온갖 안해본 실무일을 처리하다 보니, 우울증에 걸릴 판이었다. 그래도 가장 즐거운 건 공부하는 사람들과 뒷풀이에서 만나 사회를 좀더 살만하게 만들기 위한 새로운 꿈을 꿀 때다. 대안연구공동체는 학문의 최첨단과 대중을 연결하려 한다. 인문학을 대중화하는 것, 그리고 배운 사람이 스스로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사람을 양성하려 한다.
요즘 새로 시작한 언어철학 동아리, 러시아 문학 동아리는 중고교 교사, 대안학교 교사, 시인, 도서관 사서 등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분들도 참여해서 책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문탁 네트워크>
마을에서 만나는 인문학 공간으로 2010년 초 용인 수지 지역 16명이 뜻을 모아 만들었다. 공부를 통해 삶의 비전을 찾아보자고 만든 공동체다. 16명의 운영위원의 의무는 “비전세미나에 참가한다, 매월 최소 7만원 이상의 운영회비를 낸다, 운영회의에 참가한다”. 임대료 관리비를 이렇듯 회원들이 내는 구조. 그만큼 집단적 관계의 힘이 강력하다. 운영되는 세미나는 다양하다. 1달에 2만원을 내면 원하는 세미나에 무제한 참가할 수 있다.
문탁네트워크는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일상을 공유해야 굴러간다고 생각한다. 공간안의 주방과 식당에서의 수다는 문탁의 오늘 그 활발한 활동을 가능케 한 중심공간이다.
내가 방문했을 때, 40평 남짓 문탁공간은 한쪽에선 <글쓰기공작소>에서 40대 여성 6명이 튜터와 함께 자신이 써올 글을 발표하고 있었다. 또 어떤 방에서는 니체의 저작을 한줄한줄 그 의미를 짚으며 세미나를 하고 있다. 식당에서 10명 정도의 여성들이 식사를 하다가 인터뷰를 마칠 즈음, 2기 <마을인문학축제> 준비회의를 한다. 가족을 넘어 마을-공동체를 이루는 곳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가장이나 주부가 아니다.
결혼 17년째 노라님은 책읽는 아줌마다. 매주 화요일 <앎과 삶> 세미나에서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을 읽었다. 문탁에 오기 전에도 문화재해설사, 공공도서관 자원활동가로 일했지만, 강좌만 듣고 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앎이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도 못했다. 여기서는 다르다. 노라님에게 공부는 자신의 생각에 근거를 만들고 행동에 힘을 싣는 것이다.
글쓰기공작소에서 공부하는 주방지기 느티나무님도 때로는 공부가 버거워 도망가고 싶지만, 조금씩 발전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재미가 아주 크다.
일상이 있고 공부가 있고 관계가 살아 있는 문탁네트워크. 하지만 문을 열 때 오늘 이토록 이 공간이 성장하리라 예상하진 못했다. 성장의 동력이 무엇일까. 수유너머에서 10년간 활동했던 운영위원 문탁은 “사람들이 이처럼 삶을 바꾸려는 전면적인 관계를 원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더 이상 아카데미나 강좌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문탁은 목공교실, 품앗이생산, 마을화폐를 위한 마을작업장을 준비하고 지역 시설 아동들과 인문학공부모임을 하는 등, 더 많은 외부의 사람들과 만나고 관계 맺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이번 취재는 앞서 말했듯이, <누가 주체가 되어 어떤 배움의 공간을 만들고 싶어하는가> <그 공간에서 어떤 관계를 맺으려 하는가>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취재를 하는 동안 내가 몸담은 배움공간의 현재를 짚어볼 수 있었고, 나아갈 방향과 빈 지점을 바라볼 수 있었다. 공간의 특성, 목표,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그 공간에서 맺는 관계의 색깔 성격이 다르다. 아카데미 공간보다는 세미나와 동호회 공간이, 그보다는 일상의 삶을 함께 만드는 배움과 실천의 공간이 관계의 질이 강력하다. 단 각 공간마다의 존재의미가 있고, 그 의미에 맞는 관계의 질을 한단계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공간마다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단순히 지적 만족을 위해 한번 듣고 마는 공부, 소비하는 공부, 삶과 분리된 공부는 내가 취재한 곳 모두가 사양한다. 그래서는 관계도 없고 서로 배움도, 삶의 변화도 나눠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다시 한번 너무도 진부해서 평범하게 들리는 <논어>의 맨 첫장 <학이>편이 새삼 마음에 꽃힌다. 배우고 때로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
배움의 공간. 그 최고의 맛은 함께 이곳에서 친구를 만나 교류하고 공부하는 재미, 삶이 성장하고 변하는 걸 같이 격려하는 관계, 문제를 함께 해결하며 새로운 시도와 꿈을 꾸는 즐거움 아닐까. 각 공간의 지향에 맞게 이것을 추진하되, 배움에 다소 소극적이고 소비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벽을 허물 수 있도록 판을 만들고 손을 내미는 것, 단 그들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존중하는 것. 고독(loneliness)과 홀로 있음(solitude)은 다르다 하지 않는가. 그래서 배움에 대한 내 키워드에는 친구, 감동과 공명, 연대가 추가되었다. 내 마음이 설렌다.
* 시민교육에 실린 원문은 첨부한 pdf 파일로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