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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예술이다." 제미란의 창조성 놀이학교 작품 발표회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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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 놀이학교의 작품 발표회를 드디어 마쳤다. 막상 발표회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하고 작품(?)을 설명하다보니 우리가 창조성이라는 예술의 세계로 함께 들어와 있음을 강하게 체험한다.
창조성 놀이학교는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의 강좌이다. 인왕산 산자락에 위치한 제미란 선생님의 감우산방에서 진행된 놀이학교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놀이터로 모여드는 아이들이다. 함께 작업을 하고 먹고 놀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소위 고향이 어디고 자녀가 몇이고 무슨 일이 하는지 요즘 고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런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해질 무렵까지 놀이터를 떠나줄 모르는 아이들처럼 “지금 여기” 놀이터에서 함께 어울려 노는 것만이 있다. 나에게 감우산방의 벗들은 그저 나와 다른 존재, 타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느슨한 친구들이다. 마법의 공간 감우산방에서는 그 타자들로 인해 <내>가 선명해진다. 책읽기는 문자를 읽는 것이 아니고, 바느질은 천을 꿰매는 것이 아니라 매 시간 우리를 다른 차원으로 인도하는 통로가 된다. 느슨한 관계이기에 꺼내놓은 아픈 감정이, 어린 시절의 상처가 우리의 깊은 마음속으로 들어가 삶의 고유한 무늬와 결로 다시 떠오른다. 그리하여 선명해진 나는 외면할 수 없는 타자와 손을 맞잡게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와 함께 하나의 서사로 이어져간다. 마치 바느질의 한 땀 한 땀이 조각들을 이어 옷을 만들고 가방을 만들고 이불을 만들었듯이. 그래서였을까? 작품을 발표하는 산방식구들의 이야기는 다시 하나의 서사가 된다.
겁 없이 뛰어들어 바늘을 잡는 게 시작인 줄 알았는데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출발이었음을, 그리하여 한 땀 한 땀 막내아들에 대한 깊은 서원과 응원을 담은 이불을 완성했다는 *희샘과 천의 성질을 수용하여 기본에 충실하게 바느질하고, 나에게 조금 너그러워지니, 완벽하지 않아도 자유롭고 그래서 즐겁다는 *원샘의 이야기는 욕심을 내려놓고 나의 취약함을 받아들이는 게 우리가 강하게 단련되는 첫 걸음임을 알려주었다. 함께 읽은 책의 한 구절 “ 강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취약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가 바느질로 나타나는 순간이다.
늘 정해진 길로만 가던 내가 바느질 하나로 일탈을 표현할 수 있었다는 *숙샘! 버려진 것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정샘! 나에게 첫 딸이듯 딸에게도 첫 엄마구나 하는 마음으로 곱디 고운 딸의 이불을 완성한 혜*샘! 어린 자신과 조우해서 엄마도 예술가였구나를 고백하며 눈시울을 붉히게 해준 *경샘! 무엇이 이런 공명을 만들어냈을까?
벗님들의 한땀 한땀 내어주는 이음의 풍만함으로 겨울을 따듯하게 나눌 수 있을 거라 한 *녀샘과 서로의 가슴 이야기를 풀어낸 시간, 조각보를 이어가던 순간이 우리가 연결되어 가는 것이라 알려준 *선샘에게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민샘은 바느질이 다른 시공간으로 넘어가는 다리라고 했다. 그렇게 바느질은 그것이 가져온 내 안의 어떤 <사태>를 들여다보게 한다. 저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 있어서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어떤 것들과 마주보게 한다. 나는 내 안의 아이를 깨울 수 있었고 그 아이가 놀게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미*샘도 우리 벗님들과 함께였기에 추억을 잇고 기억을 깁을 수 있었으리라.
바느질하며 책읽기를 한다는 것이 하루를 채워가는 소중한 밥상이며 일상이 된다는 혜*샘과 드디어 나의 이불을 찾고 그 이불을 덮은 내 마음을 달구어 나도 누군가를 품고 싶다는 윤*샘의 이야기는 고로 일상이 예술이고 예술이어야만 한다는 제미란 선생님의 선포로 이어진다. 함께해서 영광이며 귀하다는 *자샘의 고백은 그렇게 우리의 고백이 된다. 창조성 놀이학교의 작품 발표회는 성찰과 고백으로 공명하며 일상이 곧 예술이라는 선포로 하나의 서사가 된다.
그러나 책무감과 도덕성으로 자신을 괴롭히기 일쑤인 나 자신은 여전히 쓸데없이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놀이학교 수업의 과정과 결과물을 나는 어떻게 확장해가야 하나? 감우산방을 내려간 후 일상과의 괴리감은 어찌할까? 여전히 산 아래 일상은 그저 일상으로 그치고 마는데..... 유한마담처럼 이렇게 먹고 마시고 놀아도 되는 걸까? 겨우 만난 내 안의 아이에게 자꾸 훈계하려는 내 안의 꼰대를 어쩌지 못한다. 여전히 나에게 고민을 안겨주는 창조성 놀이학교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노는 마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산방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나란 존재가 드러나고 알려오는 시간이기에 모두 기쁜 흥분으로 취할 수 있다. 아하! 나 여기 있다! (Here I am!) 나 여기 있다 ! 나 여기 있었구나!의 발견에 감탄하는 시간이 된다. 하고자 일에 “예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완벽으로부터 면제될 권리를 얻는다고 했던가! 우리의 작품이 예술이듯 우리 자신도 예술가라면 불완전이야말로 우리의 권리이자 정체성이지 않을까? 나의 화두 온전함(wholeness)이란 완벽하게 흔들리지 않는 절대성이 아니라 불완전하기에 변화와 시련에 흔들흔들, 흔들리며 적응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지식과 이성을 쌓으려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래서 “ 노는 마음” 일 것이다. 창조성 놀이학교는 앞으로도 놀이<터>를 만들어주고 나는 반짝거리는 서로의 눈을 맞추며 놀 궁리를 하게 되겠지!
현장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