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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고 둥글게 춤을, 서초동의 밤> 10월 5일 촛불집회 참가기
“검찰개혁! 우리 9시에 춤을 춥시다.”
10월5일, 서초역 7번출구 근처 주유소에서 만나자. 지난 9월 28일 집회에 나왔던 몇 사람이 제안했다. 단지 그뿐 누가 나오는지도 알지 못했다.
5시, 교대역부터 꽉 차버린 인파를 뚫고 내가 약속장소에 도착했을 때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시끄러운 집회에서 춤을 추려면 대형스피커가 필수. 지하철로 이 무거운 스피커를 한 시간 걸려 4시에 미리 옮려오느라 녹초가 되어버린 0범쌤, 이 행사를 제안하고 뭔가 특별한 장치를 위해 커다란 종이꽃과 작은 꽃을 만들어온 백결선생, 그리고 0하샘이 앉아 있다. 우리 자리는 본대열에서는 떨어진 주유소 안. 어차피 장사못하는 주유소가 고맙게도 화장실과 내부공간을 시민들에게 내준 것이다.
옆에는 70은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이 얌전하게 앉아 구호도 외치고 간식도 먹는다. 인천에서 오셨다고. 왜 나오셨는지 물어봤다. “처음엔 조국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 검찰이.”
잠시후 느티나무 시민연극단 남자배우 0징쌤이 나타났다. 잠시 앉아 있더니, “먹을 걸 좀 구해올게요” 하고 가신다. 그런데 30분후 빈손으로 돌아왔다. "사람이 너무 많아 나갈 수가 없어요."
No Problem. 그 사이 도시의 노마드 0주쌤, 0영쌤, 시민연극단 0현쌤이 사탕, 김밥, 무화과, 사과를 가지고 왔다. 마치 소풍나온 기분. 나도 집에서 바나나, 떡을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왔다. 나는 옆자리 아주머니들에게도 간식을 나눠드렸다.
도시의노마드 0숙샘, 시민연극단 0락샘, 0찬샘도 나타났다. 0찬샘은 무슨 보급투쟁하는 사람처럼 김밥, 육포, 샌드위치를 한아름 들고 왔다. 7시경 며칠전 개인전을 마치고 몸살이 난 도시의 노마드 0갱쌤도 귤을 한아름 풀어놓는다. 오늘 춤 안무를 맡아 우리를 리드해주실 선,휴샘도 겨우겨우 인파를 뚫고 힘들게 합류했다. 느티나무 시민연극단 0옥샘도 보인다.
바로 앞에서 연사들의 열띤 발언이 이어진다. “조국수호, 검찰개혁.” 사실 여기 함께 한 사람들 중에는 조국 수호에는 반대하지만, 검찰개혁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다. 조국 장관과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도 있다.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그러나 그런 걸 따지지 않는다. 검찰개혁 하나에만 동의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여러 의견 차이를 용인할 수 있다.
9시가 다가오면서 감우산방친구들 0희샘은 아들과, 0란샘은 남편과 함께 나타났다. 70대 건강미인 0주샘도 그 후배 0희샘과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우리가 춤을 추기로 한 시간은 9시. 집회는 끝날 기미가 없다. 어디서 춤을 추지? 우리 멤버들만 20명은 되는데, 이 인파속에 움직이다가 사람들 다 흩어지면 어떻하나? 고민을 하기도 전에 앞서서 누군가 움직이고 우리는 따라간다. 그러다 서초역 사거리 중앙이 경찰에 의해 진공상태인 걸 발견했다. 몇 명이 “저기로 가자”. 그런데 아뿔싸 10명이 사라졌다. 우리를 리드해줄 선,휴샘도 전화를 안받는다. 안들리는 모양. 초조하게 전화를 걸고 걸고... 드디어 통화가 됐는데, 이분들은 교대역 8번출구에 벌써 도착했다고. 뭔가 의사소통에 크게 착오가 있었던 듯.
어쨌든 흩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모두 손을 잡고. <홀로 아리랑>, <좋은 나라> 이 음악에는 천천히 감정을 담아 부드럽게 움직인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미래를 향한 우리의 마음을 담아 발로 땅을 밟고, 팔을 뻗어 앞으로 하늘로 향한다. 우리를 에워싸고 시민들이 구경을 한다.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초대한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춤추는 원이 커진다. 순식간에 두겹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한다. 내 손을 잡은 40대 남자는 박자가 맞거나 틀리거나 상관없이 즐기고 있다. 그 손이 난로처럼 따뜻하다. 그 마음의 열기가 전해진다. 가을밤 싸늘했던 내 몸이 풀리는 것같다. 한 50대 여성은 가방을 친구들에게 맡기고 춤판으로 뛰어든다. 20대 남성은 소지품을 센스있게 춤추는 중앙에 놓고 합류한다.
나는 이런 난장이 좋다. 집회에서 큰 스피커와 무대가 준비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제각기 자기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다. 무대 정면을 바라보며 관객으로 앉아 있는 집회시간은 1시간을 넘기지 않으면 어떨까?
10시반이 넘자, 서초역 사거리에 차를 통행시키기 일보 직전. 춤을 마무리하는 사이, 우리는 섬이 되었다. 서로 잘가라 인사하고 뒷풀이도 없이 헤어져 교대역으로 걷는다. 조금전 그 수많은 인파가 시위하던 자리 맞나? 쓰레기 하나 남은 것이 없이 깨끗하다. 길거리 식당들은 대목을 맞았다. 식당안 자리가 다 꽉 차 있다. 귀가하는 사람들 모두들 표정이 밝다.
돌아오는 전철안에서야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어디서 나온 사람들인가, 왜 춤을 추는가” 인터뷰를 하고 싶어 계속 묻고 다닌 사람이 있었지. 기자였나? 모르겠다. 우리는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춤추는 데 몰두하느라. 그런데 사실은 그 질문에 뭐라 대답할지 생각해본 적도, 얘기를 나눠본 적도 없었다.
“우리는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수강자들이에요.” 이렇게 답했으면 됐을까?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에는 여러 서클들이 있다. 그 중에서 <춤서클 도시의 노마드>, <느티나무 시민연극단>, 책을 읽으며 바느질 등 손작업을 하는 <감우산방 친구들>. 이들 가운데 20여명이 지난해부터 평화의 둥근춤을 경험했다. 우리는 지난 4월 세월호 5주기에 광화문 광장에서 그리고 7월 고 노회찬 의원 1주기 추모행사에서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위로하고 기억하는 마음으로.
단순한 동작이지만 음악에 마음을 집중해서 움직이는 춤, 함께 손을 잡고 움직이면서 둥근 원이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있다. 오늘은 그 에너지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검찰개혁으로 향했다. 춤을 추는 우리의 동그라미는 언제나 열려 있다. 이 동그라미에 어떤 이름을 붙여주면 좋을까?
글. 주은경 아카데미느티나무 원장
이름이 꼭 있어야 하나요?
왜 서초동에 와서 개혁을 바라는 구호를 외칠까 하는 같은 맥락이라고 봐요.
이름이 없어도 함께 추는 춤! 때론 막춤도 출 수 있구요.
춤으로 표현하는 개혁의 외침.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의 힘을 느낍니다. 그리고 시민의 힘을 느낍니다.
"도시의 노마드" 입니다.
어디 소속이예요?
"참여연대 시민동아리 입니다."
어디로 연락하면 되나요?
"참여연대 느티나무 아카데미로 연락주세요"
명함을 하나 만들어야겠네요
함께 춤을 추고 나면 물어오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말입니다
도시의 노마드 공용명함 어떨까요?
<도시의 노마드> 말고도 <시민연극단> <감우산방친구들> <평화의 둥근춤> 그리고 또 또... 우리의 동그라미는 크게 열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