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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후기┃스무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힘들었던 고3 여름방학, 나를 지치게 하는 건 살이 녹아내릴 것 같은 더위보다 과연 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었다. 내년 이맘때쯤 또 이 자리에 앉아 이 문제집을 보고 있게 되는 건 아닐까,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수학공식 대신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언젠가 이 힘든 터널의 끝에 비춰질 풍경에 대한 희망이었다. 결국 그 시간들이 지나 20살이 되었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낭만과 열정이 넘치는 캠퍼스라이프를 기대했다. 그러나 고3의 터널을 지나 대학에서 배운 것은 낭만과 열정이 아니라 영어의 중요성과 취업캠프 노하우였다. ‘대학가면 살빠진다.’ ‘대학가면 남친 생긴다’ 보다 더 무서운 공수표가 이제는 ‘대학가면 해방이다’가 아닐까. 고3들이여,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5년 후, 후배를 바라보는 선배의 안타까움
그러나 꿈은 계속되어야 한다. 지금 많은 대학생들이 하는 것처럼 처음, 나도 그랬다. 이미 내가 대학을 들어올 즈음부터 토익과 학점과 봉사활동은 강조되던 것이었다. 불안했다. 학교를 마치고 곧장 집으로 향하던 내 일상은 남들보다 뒤처지는 듯한 불안감을 느끼게 했다. 강의가 끝나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친구들을 보며 내가 집에 가서 쉬는 사이 영어학원을 다니는 것은 아닌지, 인턴면접을 보러가는 것은 아닌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불안했던 나날들. 결국 나는 학교에도, 학원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어중이떠중이가 되어 청춘을 흘려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다 부질없었다. 무작정 남을 따라 쫓아다닌 것들은 허깨비였고 허상이었다. 멋모르던 20살에서 훌쩍 나이가 들어 25살이 되고 보니 진짜 해야 할 것들은 따로 있었다.
여행에 필요한 건 칫솔뿐이다
Q. 다시 과거로 돌아가 예비신입생이 된다면 어떤 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
강좌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신입생을 갓 벗어난 20대 초반의 대학생 몇명과 간단한 좌담회 시간을 가졌다. 다시 19.5살이 된다면 무엇이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모두 입을 모아 하는 소리는 ‘여행을 가겠다’였다. 나 또한 청춘에 마음껏 여행해보지 못한 것이 아쉬운 찰나에 반가운 소리였다. 여름방학, 시루떡 찌듯이 학원 강의실에 빼곡히 들어앉아 토익공부를 했었다는 사실이 후회스럽다. ‘중요한 것은 영어’라는 명제에 매달려 2년마다 갱신해야하는 토익을, 무려 1학년 때부터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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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통인에서 좌담회를 진행했다.
팔팔한 20대가 아니면, 1년 중 무려 넉달의 방학이 주어지는 대학생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여행이 아닐까. 물론 여행을 떠날 때 돈은 꼭 필요하고, 여행경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학비를 벌어야 하는 압박감에, 목돈을 모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선뜻 떠나지 못하는 것이 지금 대학생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번 시작하고 보니 여행이란 것은 커다란 준비와 엄청난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주머니에 있는 돈만으로도, 한달치 알바비만으로도 얼마든지 어디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것이 여행이었다. 여행에 필요한 건 칫솔뿐이란 말이 있다. 이 말대로라면 무전여행도 해볼 법 하다. 이것 모두 청춘이 아니라면 하기 힘든 것이다.
유명 멘토만 찾아다니는 세상 속에서
강좌를 기획하기에 앞서, 타 기관에선 어떤 강좌가 개설되는지 조사했다. 아카데미 느티나무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관에서 다양한 강좌가 개설되고 있었다. 참여연대가 대학생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다른 기관 또한 어떻게 하면 대학생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 몇몇 곳은 인문학․예술 등의 영역 이외에 이미 대학생을 타겟으로 하는 멘토특강을 릴레이식으로 하고 있었다. 대체로 대학생들의 구미가 당길만한 유명 멘토들이 사랑과 성공․행복 등을 논한다. 그만큼 호응도도 높다.
나에게도 멘토가 있다. 한비야,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을 돈 그녀가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나에게 ‘여행’을 꿈꾸게 해준 내 인생의 멘토. 그런데 사실, 여행을 떠나게 해준 건 멘토의 책이 아니었다. 그저 어느날 문득, 나만의 시간을 갖고싶다는 생각으로 떠났던 내 발걸음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멘토는 어디까지나 멘토일 뿐 자극 그 이상의 실천하는 힘을 주진 못했다.
언젠가부터 대학가에 ‘멘토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멘토라는 말만 붙으면 학생들은 불나방처럼 몰려들고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서, 동해안의 눈 쌓인 7번 국도를 걸으며 앞으로의 인생을 다짐해보는 것은 유명강사진으로 구성된 멘토링 강좌를 쫓아다니며 느끼는 자극과는 분명 달랐다.
이런 강좌가 있다면 수강하시겠어요?
그래서 내가 꿈꾸는 강좌는 여행을 실천하는 강좌다. 실제로 직접 나의 도보여행 계획을 짜고 피드백을 받는 그런 강좌. 한주쯤은 여행을 다녀온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극을 받아보는 기회를 가져본다. 또 한주쯤은 여행이 왜 필요한가를 인문학적으로 고찰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러나 강좌의 핵심은 직접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한주정도 강좌를 쉬고 여행을 다녀온 뒤, 다시 만나 나의 여행은 어땠는지 서로 이야기해보는 세미나식의 여행강좌를 생각한다. 앞으로 더 여행해보고 싶은 곳을 계획하는 시간도 있으면 좋겠다. 여행기를 쓰는 법, 간단하게나마 풍경사진 찍는 법도 배우고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찌됐든 내가 꿈꾸는 여행강좌는 가만히 강의실에 가만히 앉아 듣고만 그런 류의 강좌는 아닐 것이다.
청춘, 청춘이 아니면 하기 힘든 것이 여행임을 20살 후배들이 빨리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등짝을 밀어서라도 여행을 보내고 싶다. 만약 정말 이런 강좌가 개설된다면, 20살의 당신은 수강해주시겠는가?
와 도보여행! 글을 읽으면서 저도 지난 여름 참여했던 국토대장정의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여행 강좌를 기획하신다니, 제가 스무살이라면 꼭 지원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