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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시민교육 현장의 소리 4 -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배움
아카데미느티나무 10주년 기획 - 시민교육 현장의 소리 4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배움
- 지성·감성·영성의 통합
글. 주은경 아카데미느티나무 원장
지난 4월 13일, 광화문광장 세월호 5주기. 태극기부대의 소음이 고막을 찌른다. 시민들 40여 명이 손을 잡는다. 들꽃같이 작은 음악 소리에 초집중하며 한 몸처럼 움직인다. 아카데미느티나무 <평화의 서클댄스> 워크숍 참여자들이다
안녕이라 말해본 사람. 모든 걸 버려본 사람. 위로받지 못한 사람. (중략) 누가 내손을 잡아줘요. 이제 일어나 걸을 시간. 누가 내 손을 잡아줘요. 이제 일어나 걸을 시간. 이제 내 손을 잡고 가요.
- 한강, 노래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
세월호의 슬픔을 위로하며 고요히 춤추는 시민들. 태극기부대가 상징하는 세력에 맨몸으로 저항하는 듯하다. 그 눈부신 봄날의 오후, 나에게는 10년 전 아카데미느티나무를 시작했던 그 봄이 겹쳐진다.
아카데미느티나무의 목표와 방향
1994년 창립한 참여연대는 1996년 부설 시민교육기관 참여사회아카데미를 시작했다. 당시 시민운동과 시민사회에 대한 교육이 거의 없던 상황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수강생이 감소하면서 2002년 활동을 중지했다. 그후 참여연대 10년 평가를 계기로 비정기적으로 시민교육을 진행했다. 나아가 안정적인 시민교육을 지속하기 위해 2009년 3월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의 이름으로 다시 그 문을 열게 되었다.
한번 문을 닫았던 경험이 있었던 만큼 참여연대 안팎에서 우려와 기대의 시선이 교차했다. “참여연대는 민주주의, 자본주의 등 기본 교육을 해야 한다.” “아니다. 딱딱하고 무겁지 않게 가야 한다. 참여연대답지 않은 교육을 해달라.” 이것은 광우병 촛불을 경험했던 당시 한국 사회 시민교육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는 목소리였다. 이렇게 시작한 아카데미느티나무는 지난 10년 어떤 목표와 방향으로 활동해왔는가.
자신의 경험을 객관화하고, 자신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과 생각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스스로 사고할 줄 아는 시민, 작은 차이를 넘어 큰 연대를 할 수 있는 시민,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되, 행동에 앞서 학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는 시민, 냉철한 이성만큼이나 따뜻한 가슴으로 시대의 어려움에 공감할 수 있는 시민, 역사의식과 민주주의를 삶의 현실에서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려 노력하는 시민을 이 시대는 필요로 합니다.
- 아카데미느티나무 사업계획 자료 중에서
이런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 자신과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키우는 것, 그리고 배움을 통해 그 삶을 변화시키는 것, 이것이 아카데미느티나무의 중요한 목표다. 그렇다면 이 목표에 다가서기 위한 배움의 과정은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할까.
왜 지성, 감성, 영성의 통합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의문에 부딪힌다. 예컨대 고령화사회는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시대 페미니즘은 왜 더욱 중요한가. 사랑이 무엇이길래 이 시대의 사랑은 왜 더 힘들게 되었을까.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고 싶은가.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며 남이 원하는 인생이 아닌 내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모든 종교들이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하는데, 왜 거의 모든 전쟁에 종교가 관여되어 있는가 등등.
이 모든 것이 공부의 주제다. 스스로 생각하고 함께 사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처한 삶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지성, 타인의 고통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감성,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며 성찰하는 영성의 통합이 필요하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영성은 무엇인가.
영성은 ‘진짜 자신의 말과 행동을 하는 힘’, ‘세계와 온전히 교류하며 자아를 실현하는 힘’, ‘나와 타자를 사랑하는 힘’, ‘분노와 갈등을 웃음과 유머로 전환시키는 힘’이다. 이러한 영성이 지성과 감성과 통합되었을 때, 우리는 돈과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시민, 지치지 않고 저항하는 시민, 연대하고 관용하는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방향성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민주주의’, ‘불평등과 정의’, ‘근현대역사’ 등을 주제로 한 강좌들이 일방적인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인문학 독서서클>, <철학과 함께 하는 민주적 진행자워크숍>, <좋은 삶 유쾌한 변화-와하학교>, <꿈분석 워크숍>, <술술타로, 나의 무의식친구와 친해지기>, <창조성놀이학교>를 밀고 왔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사회학자, 철학자, 인권평화학자, 연극연출가가 힘을 합치는 통합교육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 대표사례가 2014년의 교육연극 워크숍 <기억을 기억하라>이다. 기억에 대한 강의를 듣고 나서, 국가의 폭력이 내 몸 안에 어떤 아픔으로 기억되어 있는지 즉흥연극을 하고 집단시를 창작했다. 함께 공부한 사람들이 그 생각을 언어로, 몸으로 표현하는 경험이 얼마나 강렬한지, 통합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아카데미느티나무가 추구하는 통합성은 방향이다. 강좌와 참여자들의 특성에 따라 그것이 실현되는 수준은 다르다. 다만 그 상황에 맞게 이 방향성을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 우리는 그것을 늘 고민한다.
퇴근 후 시민들이 강의실을 꽉 채운 어느 겨울밤, <세계화 시대의 불평등이해하기> 강사인 김만권 선생님과 시를 읽던 날이 떠오른다. 공부의 주제가 이 시로 인해 더욱 마음으로 다가온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중략)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
지성, 감성, 영성의 통합으로 세상과 나를 변화시키는 배움. 그 산을 오르는 길이 앞으로 점점 많아지고 넓어지길 바란다. 그 길을 손잡고 걸어가자. 즐겁게 천천히 춤을 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