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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시민교육 현장의 소리 2 -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백결선생’
아카데미느티나무 10주년 기획 - 시민교육 현장의 소리 2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백결선생’
글. 주은경 아카데미느티나무 원장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이번 글을 쓰면서 이 노랫말이 떠올랐다.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가 무슨 일을 도모할 때 늘 힘을 주고 몸소 움직이는 해결사 백미정. 그리하여 별칭이 ‘백결선생’.
춤에서 민주주의까지, 다양한 영역을 통섭하며 성장하는 경험
“처음 아카데미느티나무를 알게 된 건, 2016년 봄 다른 시민단체의 역사 강의를 듣는 자리였어요. 그날 강사가 며칠 후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여성사 강의를 한다더군요. 꼭 듣고 싶어 그 강좌를 신청하려 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았어요.”
그런데 홈페이지를 자세히 보니 프로그램이 아주 다양했다. 뜻밖이었다. 인문학부터 그림그리기, 연극, 그리고 꿈 분석까지. 시민단체에서 이런 걸 하다니. 그중에 최보결 선생님의 <도시의 노마드 춤 워크숍> 홍보문구가 그녀의 눈에 확 들어왔다.
“몸치를 위한 춤입니다. 주름진 몸, 찌질한 몸, 모든 몸을 환영합니다.”
20대 이후엔 춤이라곤 한 번도 춰본 적이 없는 몸치인데… 나 같은 사람이 정말 춤을 출 수 있을까? 한번 해보지 뭐.
그런데 춤을 시작한 후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이어졌다. ‘도시의 노마드’ 남녀 회원 20여 명과 함께 참여연대 창립기념행사에서 춤을 췄다. 촛불이 타올랐을 때는 ‘도시의 노마드’ 친구들과 광화문광장에서, 태평로에서, 통인동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춤을 췄다. 마음이 뜨거워 날이 추운 줄도 몰랐다.
“춤을 추며 느꼈어요. ‘자유’란 단지 언어가 아니고 진짜 내가, 내 몸이 직접 느낄 수 있는 거구나. 정치적 의사 표현도 춤으로 하니 이렇게 즐겁구나.”
이렇게 춤에 첫발을 디딘 후 그녀는 다른 예술분야로 폭을 넓혀갔다. <미술학교 인물페인팅> 수업에 참여한 후에 아카데미느티나무 그림동호회 모임 ‘그림자’ 멤버로서 정기전시회에도 작품을 냈다. ‘테라코타 자화상 만들기’에도 참여했다. 지난 2월, 참여연대 카페 통인에서 열린 테라코타 전시회에서도 그녀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해학을 담은 도깨비, 몽골소녀 푸지에, 그리고 자신을 똑 닮은 자화상까지. 그녀는 이렇게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면서 무엇을 경험했을까?
“우리는 늘 경쟁하고 비교하며 살잖아요. 심지어 취미로 하는 것도 저 사람이 나보다 더 잘하는지 아닌지 스트레스 받죠. 그런데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는 잘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함께 격려하면서 서로 배우고 그걸로 충분히 즐거운 분위기가 제일 좋아요.”
내가 주목하는 것은 단지 그녀의 예술 활동만이 아니다. 그녀는 배움의 영역이 다채롭다. <배움의 공동체 독서서클> <경제민주주의를 말하다> <아시아 학교-인도> <좋은 삶, 유쾌한 변화 와하학교> <북한역사의 비밀> <정치철학 한나아렌트 읽기> <여행, 지도, 소비의 역사>까지.
아카데미느티나무는 지난 10년 동안 “지성, 감성, 영성의 통합”, “진보, 인문, 행복의 배움터”를 추구해왔다. 과거 익숙했던 지식과 이론 중심의 강의방식 시민교육에서 벗어나 함께 관계 속에서 서로 배우며 삶을 변화시키려 노력했다. 따라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느티나무 안에서 다양한 영역을 통섭하며 성장하는 경험은 매우 소중하다. <민주주의학교>에서 시작해서 연극, 그림, 춤으로 그리고 <시민예술>에서 시작해서 <인문학교>로 폭을 확장하는 시민들이 아카데미느티나무 안에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 흐름에 그녀가 있다.
아카데미느티나무 춤서클 ‘도시의 노마드’가 태평로 한 가운데서 춤을 추고 있다
언제나 든든한 아카데미느티나무 공식 해결사
또 하나, 이건 내가 그녀를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그녀는 필요할 때 언제든지 나타나 몸으로 돕는다.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듯 까르르 웃으면서. 그녀는 3년 동안 <춤서클 도시의 노마드>강좌에서 진행팀 구성원으로 활동해왔다. 매월 모임 때마다 간식 준비에 늘 몸이 분주하다. 특히 지난해 6월 춤서클 ‘도시의 노마드’가 강원도 양양 바닷가로 1박 2일 춤추는 엠티를 갈 때, 여럿이 함께 준비하는 과정을 총괄하고 빈 부분을 채워주었다. 심지어 누가 타박을 해도 특유의 개그 본능으로 모든 과정을 웃음의 축제로 만들어냈다.
촛불 거리행진을 하면서 작은 퍼포먼스를 해볼까 누군가 의견을 냈을 때도, “아! 재밌겠다. 해보죠.” 그녀는 도시의 노마드 친구들과 함께 ‘탄핵 박근혜’ 글자를 외투에 모자에 테이프를 오려 붙이고 광화문 거리를 누볐다.
지난해 6월, 함께 공부하는 회원이 산더미처럼 쌓인 이삿짐에 눌려 정리를 못 하고 헤매고 있을 때 그걸 사진 찍어서 단체카톡방에 올려 주고 필요한 사람이 가지고 갈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었다. 5일 동안 그 집에 출퇴근하며 목장갑과 고무장갑을 끼고 냉장고 음식부터 숟가락, 주전자까지. 버리고 정리하고 동네 경로당에 기증해주었다.
지난 해 봄,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후손 박진수 화백의 전시회 오픈 행사의 음식 세팅도 그녀가 시장에서 사 오고 주문하고 세팅하는 일을 혼자서 다 해냈다. 그날의 주인공 박진수 화백과 이전에 알던 사이도 아니었다.
의미가 있다고 여기면 몸이 움직이는 사람, 이런 거 한번 해볼까 조심스럽게 누군가 의견을 낼 때, 용기를 주고 지지하며 손 잡아주는 사람. 나는 아카데미느티나무가 추구하는 ‘지성, 감성, 영성이 통합된 시민 리더십’의 단면을 그녀에게서 본다. 아카데미느티나무는 이렇게 따뜻하고 멋진 시민들이 모이는 곳.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여러 사람의 ‘백결선생’들이 즐거운 배움의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이 지난 10년 동안 만들어온 이 열린 우정의 공간에 또다른 ‘백결선생’ 당신을 초대한다.
촛불 거리행진을 앞두고 퍼포먼스 준비를 하고 있는 ‘백결선생’
* <시민교육 현장의 소리>는 2019년 아카데미느티나무 재창립 10주년을 맞아 총 10회 연재를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