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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11/1(목)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북한 역사의 비밀(1강)_북한 체제의 기원 /김상헌 자원활동가
북한 체제의 기원- 인민 위의 계급, 계급 위의 국가(김재웅)
1. 들어가기에 앞서
한국에서 북한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려면 제법 용기가 필요하다.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과분한 사회적 관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도 이런 관심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나보다. 보통 활발하지 않은 아카데미 느티나무 페이스북 페이지 댓글 창에 어마어마한 수의 댓글이 달린 것을 보면 말이다. 북한은 언급만으로도 사회적 관심을 끌고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이지만 동시에 알려진 것이 없이 베일에 싸여 있기도 하다. 폭압적인 독재와 비참함이라는 추상적인 이미지만 떠다닐 뿐이다. 그래서인지 6월 남북회담 당시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매우 먼 줄 알았는데 따로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단 것을 생중계로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번 강좌가 반가웠던 이유도 한 번 제대로 알아볼 기회가 있겠구나 싶었다.
드디어 드러나는 참여연대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일부 애국자분들의 기대와는 달리 매우 차분하고 상식적인 역사수업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집에서 열람할 수 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강의였다.
2. 진보적인 개혁과 함께 시작된 북한정권
북한 정권의 시작은 일제 잔재의 청산으로 시작됐다. 항일운동을 하던 인물들을 위주로 구성된 북한정권은 친일청산활동과 더불어 다양한 진보적 정책들을 내놓으며 개혁을 실시한다. 지주계급에게서 토지를 몰수하는 토지개혁을 중심으로 남녀평등권법령 제정 등, 다양한 민주개혁도 이뤄졌다. 내용을 살펴보면 4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진보적인 정책들도 많았다. 특히 여성들의 자살률이 세계 2위였던 일제강점기를 고려한다면 이런 사회개혁이 민중의 큰 환영을 받았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3. 본격적인 계급투쟁노선과 2차 토지개혁
일제강점기의 지주소작제는 소작농계층을 핍박하는 폐해를 낳기에 토지개혁에 대한 지지도는 높았다. 물론 지주계층의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대다수가 노동자, 소작농이었던 북한의 인구비율상 적극적인 저항은 힘들었다. 또한 본격적으로 계급투쟁노선이 강화되면서 지주들의 입지가 약화되었다.
토지개혁 이후 북한은 본격적으로 계급투쟁노선을 추진하게 된다.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계급투쟁노선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2차 토지개혁은 이런 배경에서 실시된다. 계급투쟁노선은 민족주의 투쟁 노선을 약화시키기 위해 실시됐다. 이후 북한정권은 인민들을 출신성분과 사회성분으로 본격적으로 나누기 시작하며 인민국가의 형식을 띨 뿐인 본격적인 계급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소작농과 노동자들은 이런 계급사회에서 우대받으며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고위직으로 진출하게 된다. 과거 지주 계층에게 수탈당했던 경험이 개입되며 지주출신들에 대한 제도적, 법적 차별을 낳게 된다. 2차 토지개혁도 이 경향에서 벗어나지 않아 항일 운동을 했거나 토지를 자진 헌납했던 양심적 지주들마저 2차 토지개혁의 축출 대상이 됐다. 지주 출신들은 저항보다는 월남을 선택했고, 훗날 서북청년단에 가입하여 북한에서 학살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4. 자서전을 통해 보는 북한
현재 북한연구는 6.25 전쟁 당시 미군이 북진하며 노획한 문서들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이 문서들을 National Archive에 보관해오고 있다. 북한연구의 메카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인 이유다. 노획한 문서들 중에는 특히 자서전이 많았는데, 이를 통해 전쟁 전 북한인민들의 일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동시에 이 자서전은 인민에 대한 정부의 통제 수단임을 알 수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사상검열이나 출신성분 검토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자서전들은 현재 한국에서도 쉽게 검색해서 찾아볼 수 있다.
다만 한국전쟁 이후의 자료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한다. 학술적 자료와 1차 자료가 전전 시기에 비해 부족하므로 역사를 촘촘히 재구성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 사회가 그만큼 폐쇄적이라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대한민국에서 자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적다는 얘기로 들리기도 했다.
5. 강좌를 마치며
현재 북한학의 메카는 미국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 북한 정권을 조롱할 의도로 북한의 공식트위터를 리트윗했던 음악인이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됐던 일이 있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임에도 시민들이 북한에 대한 지식을 얻기 쉽지 않은 이유는 이와 같은 선례들 때문에 생긴 심리적 요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신기했던 점은 동아시아 4개 국(중국, 북한, 남한, 일본)중에서 미국을 아름다울 미美로 쓰는 것은 우리나라뿐이란 것이다. 다른 국가는 모두 쌀 미米자를 사용한다. 이런 얘기를 듣고 나니 어딘가 기묘했다. 우리가 얻는 지식과 사용하는 글자에마저 특정한 의도가 들어있다는 얘기니 말이다.
더 이상 북한을 공부할 때 금기의 지식을 얻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를 바라며 다음 강의들도 기대가 된다.
/김상헌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