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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5/8(화) 김만권의 ‘새로운 세계를 짓기 위한 변화의 매뉴얼 - 변동하는 우리 정치 앞서보기’ 1강 _ 기억(memory)과 정의
이번 첫 강의에서는 6회에 걸쳐 진행되는 전체적인 강의의 흐름을 짚어보고 앞으로 우리가 함께 논의하게 될 이야기를 훑어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2017년 대통령 탄핵 이후 우리 정치는 결정적 갈림길에 서있다. 새로운 변화를 이룰 것인가 아니면 구체제의 유산에 남을 것인가. 김만권 선생님은 새로운 세계를 짓는다는 것이 정치학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말씀하시기 위해 헌법을 먼저 설명하셨다.
1. 헌법(constitution)의 의미
김만권 선생님은 우리가 흔히 헌법을 문서라고 생각하지만 본래 의미는 구성(constitution)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셨다. 정치에서는 헌법은 정체를 구성하는 원리이며 정체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헌법(constitution)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1) 헌법(문서) 2) 정체의 구성 3) 정체
김만권 선생님은 ‘성공한 혁명은 새로운 헌법을 쓴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헌법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촛불혁명 이후에 새롭게 만들어질 정체는 곧 헌법에 어떤 내용을 새로 담아내야 하는가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를 짓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체계가 필요하고 그 내용을 담아내는 것이 바로 헌법이다. 우리는 헌법에 어떤 내용을 담아내야 할까? 바로 거기서 이번 수업의 주제인 ‘기억과 정의’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2. 기억(memory)의 중요성
모든 기억은 외부 충격이나 역사적 사건에서 시작된다. 촛불혁명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억의 계기를 제공했다. 김만권 선생님은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기억이라는 단어가 국가적 키워드가 된 첫 번째 사건은 ‘세월호’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않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있다.
김만권 선생님은 기억이 과거의 행위를 되짚어보는 의미를 넘어 미래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현재의 정의로 연결되기에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기억하는 자들만이 같은 부정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억은 과거를 향한 정의이자, 미래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현재의 정의라는 것이다.
기억은 반성의 계기가 된다.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의 삶의 문제는 반성 없는 삶을 살기에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우리는 같은 실수를 다시 저지르지 않기 위해, 더 나아가 우리가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 기록하고 기억해서 정의를 세워야 한다.
기억이라는 활동의 목적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을 넘어, 미래를 위한 일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를 위한 협의회는 이전에 인종 범죄를 저질렀던 가해자들이 피해자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이 행한 일을 고백하고 이 활동을 기록해서 모두에게 공유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록으로 남기고 사람들이 용서를 하는 과정에서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만들게 되고 그 결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헌법이 만들어졌다. 이런 기억의 과정을 통해 집단은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새기게 된다.
기억의 결과는 정체, 즉 새로운 헌법에 담기게 된다. 다시 말해 헌법은 집단이 어떤 과거와는 단절하고 어떤 내용은 기억할 것인가 결정한 결과물이 담기는 것이다.
3. 행위와 사유
김만권 선생님은 집단이 제대로 된 기억을 만들기 위해서 한계상황을 마주하는 것과 그에 따르는 사유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웬만해선 사유하지 않는다. 인간은 한계 상황에 마주했을 때만 사유한다”고 말했다. 한계 상황은 죽음을 앞뒀을 때를 말한다. 하이데거 같은 존재론자는 인간이 존재에 대해 질문하게 되는 건 그런 한계상황일 때뿐이라고 봤다. 이를 정치 상황에 비춰 본다면 일반적인 정치상황이 아니라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충격이 일어났을 때 우리를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표현되고 기억되어야만 의미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 마주했을 때 사유하지 못하고 명확히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김만권 선생님은 우리가 공론장에 참여하는 정치참여의 경험을 후대에 넘겨주는 것이 ‘집단적 사유의 장’이고 그 장에서 제대로 된 기억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만약 집단적 사유의 장 없이, 기억을 하나의 이미지로 공유한다면 집단의 기억이 왜곡되거나 아예 기억 자체가 부재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정치참여 경험을 곱씹는 사유의 과정을 거쳐 후대에 제대로 전달했을까? 김만권 선생님은 이에 대한 답을 1987년 6월 혁명으로 설명하셨다. 우리는 6월 혁명의 결과로 만들어진 87년 헌법 체제를 ‘민주정체로서 새로운 시작’이란 긍정적 평가보다는 ‘낡은 독재의 유산에서 완전히 헤어 나오지 못한 실패한 혁명’이란 부정적 평가에 방점을 찍고 바라본 경향이 있다.
김만권 선생님은 87년 헌법 체제가 우리가 민주주의를 기억하는 데 실패한 사례라고 말씀하셨다. 87년 헌법은 ‘법치’와 ‘민주적 정치’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탓에 헌법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지식과 개념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상태였다는 시대적 한계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일반 ‘데모스’의 의지가 군사정권이라는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고 우리 역사상 민주적 주권자가 만들어낸 첫 민주헌법이라는 점에서 유의미한 헌법이다.
87년 민주헌법을 쓴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결과, 현재 우리는 민주주의를 단순히 다수결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87년 전후 독재를 민주주의로 대체한 세대마저 사건의 온전한 의미를 곱씹고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어질 2강에서는 시민불복종과 혁명에 대해 배우게 된다. 그 뒤로는 헌법과 새로 쓰일 헌법에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는지에 대한 강의가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