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후기 l 강좌 후기를 남겨주세요
혁명과 전쟁의 20세기 후반기 세계문학-두 번째 강연 [중국 농민과 중국혁명]소감문
두 번째 강연주제는 소설 [위미]를 통해 중국의 70-80년대 문화대혁명과 이 시기 농촌의 모습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었다. 서두에 작가 비페이위에 대한 간략한 소개 이후, 강연은 크게 4가지 소주제를 다루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첫째, 20세기 중국 현대사의 흐름을 개괄함으로써 중국의 몰락과 오늘날 G2로 재성장하게 되는 과정에 대해 알아보았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의식은 중국의 몰락과 성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문화 대혁명기는 어떤 의의를 갖는가?이다.
20세기 전반기 중국의 큰 화두는 항일운동과 중국 통일정부 수립을 둘러싼 국-공의 대립이라는 두 축이 중심이었다. 따라서 24년과 37년의 1, 2차 국공합작을 통해 항일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46년 국공내전으로 지도부가 분열하면서 홍역을 앓기도 하였다.
이후 49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거듭난 중국의 20세기 후반기 과제는 사회주의개혁과 경제발전이었다. 이에 따라 58년 사회주의 개조 완료선언을 하고, 대약진 운동을 전개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현실에 맞지 않는 사회주의 개조선언과 무리한 공업화 정책을 추진한 것이 원인이었다. 그 이후 66년부터 76년까지 문화대혁명을 진행하였다. 이것은 자본주의, 수정주의, 관료주의적 인습을 타파하기 위한 운동이었다. 하지만, 마오의 권력욕, 그리고 개인숭배사상을 확산할 의도였다는 해석도 가능한 만큼, 이 혁명은 양날의 칼로써 이해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소설 [위미]의 시대적 배경이 바로 70년대~80년대 초반부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위미]는 문화대혁명이 한창 진행되는 과정의 농촌의 모습과, 그 직후의 모습들이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둘째, 현대 중국과 북한의 복잡한 상호관계를 4가지 시기구분을 통해 파악하였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오랜 혈맹관계라고 생각했던 북중관계가 실제로는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우호적이기도 하고, 긴장관계를 갖기도 했던 복잡한 관계라는 점이다.
강연에서는 크게 4가지 시기구분을 중심으로 파악했는데, 북중혈맹관계의 첫 출발점은 항일전쟁기였다. 1930년대 이후 전개된 조선인 항일운동은 점차 중국편제로 흡수되었다. 1국1당원칙에 따라 항일유격대가 중국공산당의 지도아래 활동하였고, 김일성 부대는 36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편제되었다. 한편, 국민당 계열로 활동하던 조선의용대 또한 대부분이 화북지역에서 공산당 팔로군으로 합류하면서 조선의용군으로 발전해나간다.
두 번째는 46-49년 국공내전기이다. 이 시기 공산당이 국민당을 압도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만주지역에 일본에 의해 설립되었던 군수공장들과, 당시 만주 지역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이주 조선농민들의 공산당 지지에 있었다. 또한 공산당 소속으로 활동하였던 조선의용군도 국공내전에 적극 참여하면서 국민당을 제압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세 번째는 50-53년 한국전쟁기이다. 이번엔 두 번째 시기와는 반대로 중국군이 북한을 지원하는 양상을 띤다. 중국 또한 북한의 소멸을 순망치한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한편, 이 시기 중국군이 38선 이남으로 남진하지 않고, 중재안을 받아들였다면 전쟁은 51년 봄에 끝나고, 중국군의 피해도 적었을 것이라는 최근의 연구가 있었다. 결국 실리보다 이념과 명분을 고집하는 태도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만 가중시킨 셈이다.
네 번째는 70년대 이후 문화혁명과 베트남전쟁기이다. 이 때는 북중이 갈등관계로 나아간다. 문화혁명기 홍위병들이 ‘북한의 첩자’라는 누명으로 많은 조선인과 중국인을 탄압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한편으로는 이 시기 중국의 마오 개인숭배와 후계자 지정작업이 북한에도 영향을 주어 김일성 우상화와 김정일 후계작업에도 좋은 명분으로 작용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베트남전쟁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드러냈던 소련과 북한과는 달리, 중국은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또 북중 간 갈등관계를 맺는다. 한편, 북한의 베트남전쟁에 대한 관심은 남한의 베트남파병을 저지하려는 각종 테러로 이어지면서 남북관계 또한 극히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셋째, 본격적으로 [위미]의 내용으로 들어가서 세 단편들 사이의 차이점, 여성-남성 등장인물들 간의 비교, 그리고 당시 시대상의 영향 등을 주제로 비평이 이루어졌다.
우선 1부와 2부를 비교하면서 제기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1부의 주인공인 위미와 2부의 주인공인 위슈를 작가는 균형있게 바라보는가? 교활한 여우이자 성폭력 피해자로 그려지는 위슈의 양면적인 모습은 과연 실감나는 캐릭터인가? 위슈의 썸남이었던 자신의 이복아들에게 위슈의 치부를 드러내는 이간질을 함으로써 자신의 안전을 지키고, 위슈의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한 위미의 행동은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1부와 2부의 비교가 여성주인공에 초점을 맞췄다면, 상대적으로 2부와 3부의 비교는 남성주변인물들의 행동변화에 주목한다. 1, 2부에서 그려지는 남성들, 대표적으로 궈주어와 펑궈량이 갖고 있는 연애/결혼관과 3부에 등장하는 남성인물들의 그것은 대조를 이룬다. 후자의 연애관이 좀 더 자유연애사상에 가까운 것이다. 그것은 3부의 시대적 배경이 더 나중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3부의 시대적 배경이 더 도시와 가깝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 밖에 소설에 녹아있는 시대적 배경은 다음과 같다. 군인을 강조하는 군사문화, 도농격차, 여전히 잔재하는 봉건적 가부장제 위계질서 구조들, 사회주의 혁명의 결과들.
넷째, 현대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주의 혁명은 러시아 혁명과 문화대혁명을 들 수 있는데, 러시아 혁명은 실패한 혁명으로 인식되는 반면, 중국공산당은 어떻게 현재까지 건재할 수 있는 지 비교해보았다. 러시아의 경우는 혁명 이후 수많은 숙청을 진행하면서 공포에 기반한 억압적인 체제를 유지하면서 공산당과 지식인 그리고 대중의 관계가 유리되었다. 반면, 중국의 경우, 물론 혼란은 있었지만 러시아만큼 농촌공동체 자체가 파국으로 치닫는 정책을 시행하지는 않았던 탓에 상대적으로 공산당과 지식인 그리고 대중의 관계가 긴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지도부가 택했던 전략이 다를 수밖에 없었던 궁극적인 원인은 지도부의 정치적인 권위와 정당성 유무에 있었다. 러시아의 경우 10월 혁명에서 지도부가 큰 역할이 없었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그것이 공포에 기반한 억압정책으로 드러났다. 반면, 중국의 경우는 지도부가 항일운동과 국공내전을 함께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정당성을 갖고 있었다.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낯선 사람의 입장에서 단편적으로 소설[위미]를 접한다면,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강연을 통해 중국의 역사적인 배경과 북중관계, 사회주의 혁명 간의 비교를 함으로써 소설의 이해에 더 도움이 되었다. 보다 폭넓은 맥락과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강연에서 제기되는 소설 내용에 대한 질문들 또한 새로운 관점에서 작품을 뜯어볼 수 있게 했다. 강연 이후에 이어졌던 토의에서 많은 참가자분들이 좋은 감상평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도 강연을 통해 각자의 기존 이해에 신선한 자극이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