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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으로 읽는 그리스 비극 2] 제 2회 니체의 <비극의 탄생> 강의 후편 후기
강의의 큰 틀은 지난 강의와 다르지 않았다. 지난 시간에는 니체라는 사람과 그 배경에 대해 새로이 들어봤다면, 이번 강의에서는 내용이 조금 더 심화되어 현세를 강조하는 니체의 사상과 그의 생각, 그리고 그를 통한 그리스 비극 학습의 의의에 대해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아폴론적인 것? 디오니소스적인 것? _예술을 정리하는 한 가지 시각
교수님께서는 니체의 사상을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변증법적 상태"라는 핵심적인 단어들로 표현하시며 설명을 이어나가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철학의 ㅊ도 모르는 대학생으로서는 처음에 디오니소스라는 말을 듣고 이것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출처:구글)
위 사진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그리스로마신화인데, 약 1년 전쯤 갑자기 한 장면이 웃기다고 각종 SNS에 떠돌아다니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상의 일부이다. 명대사는 바로 "늦어서 죄송합니다, 디오니소스님." "너 때문에 흥이 다 깨져버렸으니까 책임져." 숱한 패러디를 낳으며, 아래의 사진처럼 SNL의 권혁수가 따라하기도 하는 등 많은 후속 영상을 낳았다.
내가 아는 디오니소스는 그냥 이렇게 뭔가 유흥적인 이미지에, 사람들 사이에서 요즘 들어서도 비교적 친근한 존재이다. 그런 디오니소스가 니체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건가? 디오니소스적이라는 건 뭐지? 라는 궁금증이 밀려들어올 때쯤, 교수님께서는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를 비교하며 각각이 상징하는 사회를 이야기해주셨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먼저, 사전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디오니소스적이다", "아폴론적이다"는 문학비평용어 중 하나로, 예술의 경향 사조를 논할 때 자주 대비되는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치를 '좌파' '우파'라는 용어로 성향을 명명하듯, 예술계나 문학계에 있어서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은 그런 지표의 양 끝을 담당하는 상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라는 책을 읽고 자라며 그리스로마 신들을 단순히 둘리나 뽀로로 같은 만화 캐릭터로만 생각해왔던 나에게는 이렇게 깊은 분야에서도 다루는 게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난 후 내가 정리한 '아폴론적인 것'이란, 비교적 이성적이고 논리를 근거로 하는 경향이다. 질서 있는 것, 설명이 가능한 것들이 이에 해당하며, 예술로 들어가보면 조형과 같은 엄청난 계산과 세심한 노력이 필요한 분야가 해당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아폴론적인 것의 극치는 국가의 형성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반면 디오니소스적은 즉각적인 현장 그 자체라고 교수님은 말씀해주셨다. 그렇기에 축제나 시위, 혹은 춤이나 음악처럼 그때 보고 듣는 것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예술 등이 해당될 수 있다.
# 현실에 그리스 용어 적용하기: 2017년의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그리고 니체와의 연관성
현대 생활로 들어가 보면 월드컵과 락 페스티벌같이 사람들이 도취되는 현장을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조형물들을 아폴론적인 것이라고 들 수 있다. 그렇다면 니체가 내세운 이 두 단어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그의 주장을 재해석해본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서문에서도 말했듯, 니체의 생각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변증법적 상태"로 표현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서로 상호작용해야 한다고 니체는 주장한다. 아폴론적인 것은 안정성을 기반으로 국가의 형성 등을 도우며 각종 비극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곤 하지만, 이 '아폴론적인 것'의 문제는 무언가 진리를 찾으려 노력하는 특성 때문에 현실과의 괴리인 화석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을 보호하려고 만든 법이 시간이 지나 허점이 가득해지기도 하고, 조선시대의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과는 확연히 다른 데서 이러한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놀랍게도 정 반대편에 위치해 있는 듯한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나뭇잎이 새로 태어나듯,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기존 질서를 파괴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작년의 그 촛불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디오니소스적인 것들은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창조가 일어날 만한 기반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디오니소스적인 것들로 인해 사람들은 또 다른 아름다움의 종류를 갈망할 수 있고, 이는 곧 새로운 아폴론적인 것의 탄생을 불러 온다.
과거 도시 유지 기반은 시민 종교와 시민 축제, 이 두 가지였다고 한다. 종교가 신 아래 사람이 있다는 질서를 확립했다면, 축제는 그러한 개체화를 넘어서서 서로간의 벽을 허물고 공동체가 되기 위한 연대의 기반이었으리라 추측된다. 예술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의 맥락에 적용해볼 수 있는 이 단어들은 더 이상 나한테 단순한 코미디의 소재는 아닌 것 같다. 부족하지만 조금씩 철학에 대해 배우며 즐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