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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섹슈얼리티, 민주주의 - 오해와 편견을 넘어서_4강 혐오와 폭력 : 왜 피하지 않고 공격하는 것일까?
<젠더, 섹슈얼리티, 민주주의 - 오해와 편견을 넘어서>강의를 관통하는 주제는 당연시 해왔던 것에 질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번 강의 마지막 선생님께서 좋은 질문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던것이 기억납니다. 후기를 올리기 위해 이번 강의를 정리하고 보니 질문을 잘 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차별, 혐오라는 낙인을 통해 감추려는 본질이 무엇인지, 차별과 혐오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활용되는지, 혐오를 통해 누가 어떤 이익을 취하게 될지 등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라고 정리해 주셨었습니다! 이번 강의에서 선생님께서 제시해주신 핵심 질문은 ‘왜 한국의 개신교는 동성애 혐오를 필요로 하는가?’라는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아래는 강의를 정리한 것입니다.
1. 차별, 비하, 혐오에 대하여
1-1. 차별
차별이 어떻게 구성되는가. 차별은 계급, 인종, 성, 나이, 외모, 학력 등 다양한 요인에서 작동한다. 이러한 차별로 인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당위는 실존할 수 없다. 차별 문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차별의 작동으로 인해 누군가는 배제되고 타자화되며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이다. 차별의 작동을 알기 위해서는 차별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들어오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차별은 특권 유지를 위해 이용되며 이때 차별은 정상/비정상 이분법의 방식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차별은 차별받는 개인과 차별받는 집단의 손해를 관례와 전통으로 만들어 누군가만 이익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1-2. 비하, 혐오
비하와 혐오는 다른 종류의 작동이기 때문에 비교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하는 ‘…은 열등하다’같은 문장구조로 드러날 수 있으며 가치가 없음을 의미한다. 혐오는 ‘…따위 없어져야한다’같은 문장구조로 드러날 수 있으며 ‘내 눈에 보이지 않았으면’과 같은 방식으로 쓰인다.
비하와 혐오를 구체적인 사례로 비교하기 위해 흑인에 대해 비하에서 혐오로 넘어가는 과정을 예로 들겠다. 미국에서 흑인이 노예였을때 백인들은 흑인을 비하했다면, 남북전쟁을 통해 노예해방이 된 후 백인들이 흑인들을 예전처럼 노예처럼 부릴 수 없게 되자 분리 정책을 시행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혐오’를 표현한다. 비하는 일상적으로 덜 존중받는 식으로 작동되기 때문에 무시에 가깝다면 ‘혐오’는 위협이 되지 않았던 타자, 비주류가 주류의 권리를 가져간다고 주류가 여길때 드러난다.
혐오는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 필요한 감정이며 반응이다. 하지만 위의 예시에서 ‘혐오’는 혐오 대상을 죽이는 방식으로도 인권을 무시하는 범죄의 형태로 드러난다. 이 ‘혐오’는 생존을 위한 불수의적 반응과는 다르다. 혐오 대상을 한 공간에 공존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길뿐만 아니라 그 감정을 폭력으로 표출된다는 점에서 생존을 위한 혐오와 구분해야하며 가볍게 여길 수 없다. ‘혐오’를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방식, 최근의 예로는 동성애혐오를 볼 수 있다.
2. 한국에서 개신교, 정치 상호간 영향
2-1. 종교와 국가의 연결
국가 내에서 ‘혐오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확산되고 강해지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국가와 종교간 영향을 고려하는것은 중요하다. 국가와 종교는 분리되어있지만 ‘그 안에서 마음 편히 잘 살아보자’는 같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종교간 목적이 같기 때문에 국가와 종교간 상호이해관계가 맞는 경우 협력할 수 있다.
2-2. 한국과 개신교
조선시대 말부터 종교가 국가와 어떤 식의 연결이 있고, 어떤 작용을 하는지 특이한 점들을 보자.
- 1982~83년 태극기, 애국가가 만들어지는데 태극기에 유교적 관점이 담겨있다면 애국가는 기독교를 베이스로 하여 가사가 만들어 졌다는 점에서 개신교를 찾아볼 수 있다.
- 1883년에는 개신교가 평안도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일제 강점기인 1938년에는 일본에서 한국의 신사참배를 원했는데 개신교 중 한국에 가장 먼저 만들어졌고 교인이 가장 많은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에서 신사참배를 한다. 그 외에도 헌금 납부 등 일제 부역활동을 하는데 3년 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된다. 이 과정에서 개신교는 큰 미움을 사게 되고 함경도, 평안도지역인 북에서 남으로 피난오며 서북청년단이 만들어진다.
- 1945년 개신교가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기 전, 남한에의 개신교인은 약 1-2% 정도였다. 이 와중에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공휴일이 크리스마스이다.
- 1949년 이승만 정권에서도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하는데 이때 남한에서는 단 1%만이 개신교인이었다. 대통령 개인의 종교라는것만으로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 될 수 있었을 것인가? 이승만때 국영방송을 통해 선교활동이 벌어졌으며, 최초의 민간방송이 기독교방송, 두 번째 방송도 극동방송이었다는것, 이승만 정권이 서북청년단의 도움을 받았음 등의 경우로 보았을때 종교와 국가가 어떤 이해관계 속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박정희 정권에는 개신교가 두가지 갈래로 나뉘게 된다. 빈민운동을 하는 진보운동방향의 갈래와 형태와 박정희 정권에 편입되는 갈래이다.
- 80년대 전두환 정권에서는 북한, 반공의 잣대로 정권과 의견이 다른것에 대한 강한 이분법적 통제가 들어온다. 그를 대표할 수 있는 문장은 ‘너 빨갱이야?’인데 개신교에서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또한 개신교는 민주화운동에서 어떠한 발언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매우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김영삼 대통령은 장로대통령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천주교 신자였으며, 이때부터 개신교 내부 비리(세습, 성추행, 이단 등)에 대한 방송 보도가 이어지고 사회적으로 개신교의 위상이 떨어지게 된다.
-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북한에 대한 개방은 보수 개신교가 너무나도 싫어하는 것이었다. 보수 개신교는 늘 북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보수 개신교는 북한에 선교활동을 하고 북한주민을 도왔으며 통일 한국을 위해 노력하였는데, 그 이유는 북한에 교회를 건립하기 위함이었다. 보수 개신교 내 교단들은 이미 북한을 각 지역으로 나누고 재건위원회를 만들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고 그 역할을 정권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 또한 보수 개신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미국에 보이는 태도를 반미로 여겼으며 이는 보수 개신교를 불안하게 하였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가보안, 언론, 사학등과 관련한 관리역시 보수 개신교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국가적 상황으로 인한 반미감정이 커지는 점 또한 불안요인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보수 개신교는 보수 개신교 집회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드는 장면을 보이기도 한다.
-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거치며, 기독교는 권력자를 지원하는 것에서 정치 세력화 하는 것으로 바뀐다.
2-3. 최근의 한국과 종교와 혐오
종교내에서 ‘왜 동성애혐오를 할까?’ 라는 질문을 하기에는 개신교의 동성애혐오는 아주 적극적이며 그런 적극적인 혐오는 교리의 문제차원을 넘어선다. 때문에 ‘왜 한국의 개신교는 동성애 혐오를 필요로 하는가?’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최근 육군 참모 총장의 동성애자 군인 색출은 동성애자라는것만으로 범죄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혐오가 폭력으로 드러나는 것이며, 사회적으로 집단을 배제하는 것이다. 개신교 장로이기도 한 육군대장 장준규는 한국기독군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위의 질문 ‘왜 한국의 개신교는 현재 동성애 혐오를 폭력으로 드러내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자. 한국 종교시설, 신자의 숫자를 보았을때 전체적으로 교인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로 개신교도 예외는 아니다. 개신교인구가 감소하여 교인의 숫자 확보가 안되면 개신교 세력을 유지시키기 어렵다. 이때 세력유지를 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를 결집시키는 방법을 취할 수 있다. 개신교에서는 외부의 적을 모두를 타락시키는 사탄으로 둘 수 있고 60-70년대에는 빨갱이라는 라벨링을 통해 외부의 적을 두었다. 그리고 지금은 빨갱이 구도를 따와서 동성애에 대입했다.
3. 정리
혐오는 낙인을 찍고, 본질과 구조를 보지 못하게 한다. 혐오는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된다. 우리는 혐오를 활용하는자가 얻는 이익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야한다. 개신교와 국가간 관계, 개신교의 혐오 이용에 대해 분석해 보기 전에는 개신교의 언어가 정치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도리, 윤리처럼 느껴지고 현혹되기도 하였다.
여성혐오 동성애혐오가 용인되고 유지되는 상태에서 내 위치는 어디에 있는지, 나는 혐오만 받고있는 것인지, 나와 연대할 수 있는 이는 누구인지,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