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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민혁명과 다른 세상을 위한 사회운동론] 2강 / 신자유주의 말기의 혼돈과 한국의 촛불시민혁명
[촛불시민혁명과 다른 세상을 위한 사회운동론] 2강 / 신자유주의 말기의 혼돈과 한국의 촛불시민혁명
이태호_참여연대 정책위원장
2017.03.15
<촛불시민혁명과 다른 세상을 위한 사회운동>이란 주제로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이 발제했다. 순서는 발제와 토론으로 이어지며, 발제는 1. 국가의 민낯과 행동하는 시민, 2. 신자유주의의 말기적 현상들, 3. 전환의 토대와 상상력의 4. 주권자가 이끄는 새로운 나라의 순서이다.
먼저 <국가의 민낯>을 드러낸 한국의 모습에서, 일본과 유사성을 지니며 어려운 현실에 대해 말했다.
"62, 49, 350" 이것은 한국의 대표적인 현실을 드러낸다. 62%가 한국 10대 대기업의 GDP이며, 49%가 비정규직이다. 350만 명은 한국의 100년 뒤 예상인구 수이다.
그러나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일본, 미국과 함께 매우 낮다. 남성과 여성의 임금격차는 한국과 일본이 가장 높다. 여성의 아이 갖기 전 임금과 후의 임금 차이는 타국에 비해 엄청난 큰 차이를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은 출산율이 계속해서 떨어질 수밖에 없고, 출산율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다. 타국인의 한국 이주자 비율은 타국에 비해 매우 낮다. 이유는 한국은 이주자 정책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한국의 '단일민족 신화'가 아직까지도 심하기에 더욱 이러한 결과를 보여준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투표율은 전체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2000년 후반부터 올라가기 시작했다. 과거의 정치참여 저조율이 지금의 상황을 야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사회를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인가?
1. 국가의 민낯과 행동하는 시민
2016년 10월부터 시작된 촛불운동은 박근혜를 탄핵으로 이끈 대단한 시민운동이었다. 시민들의 힘으로 “박근혜 소추안 국회 가결”과 “헌재의 인용”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시민 촛불의 위대한 힘이 이룬 역사적 성과였다. 촛불집회는 20차 연 1700만 명이 참여한 평화적인 촛불집회로 위대한 혁명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을까?
2013년에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 사건이 터져 나왔다. 이 대자보는 국민 없는 국가의 민낯에 대한 항의와 경고였다.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가 드라마와 같이 터졌다. 세월호 참사는 정부의 우선순위가 국민과 생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고, 국민에게 무배려한 모습을 가차 없이 드러냈다. 2015년의 "메르스 사태", 2016년에는 "이대농성"으로 이어졌다. 특히 "이대농성"은 시민들에게 많은 교훈을 줬다. 시민들은 초기에는 이대생들과 이대생의 학부모만큼 그 사건이 크게 와 닿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이대생이 말한 "고구마를 캐려하다가 유물을 발견했다"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유물은 우리의 일상과 깊게 관련되어있었고 발전국가라는 미몽에서 깨어나도록 도와줬다.
국민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가 가난했고, 모두가 좋아졌던 시대", “국민전체가 따뜻했던 공동체성”을 추억하며, 국민을 돌봐준 환상을 가지고 발전국가라는 미몽에 갇혀있었다. 그러나 "이대사태"라는 예기치 못한 계기로 시민들은 정신을 차리고 분노가 폭발했다.
"특권층의 민낯, 그 저열함"이 드러났다. 지난 30년간 개혁 없이 특권집단들은 재생산되었다. "이대사태"를 통해 드러난 내용은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처럼 저열했다. 재벌, 정치검찰과 국정원, 거수기 집권여당, 공안세력의 공작정치와 국정농단 등 끊임없는 저열함이다. "민중을 개돼지"로 보며, 경제권력, 관료권력, 사법권력, 지식기술권력의 유착, 양극화의 심화로 엘리트가 될 수 있는 계층과 지역이 고정되어있었다. 족벌과 인맥이 완화되어 있지 않았다. 블랙리스트와 공안/ 공작 통치로 이어지며, 위안부 합의, 싸드배치, 한일군사협정 등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권리를 위하는지, 국가안보와 국가이익을 위하는지, 국가의 역할이 손실되어있음을 보여줬다.
시민은 “국가 없는 국가, 전쟁정치와 저열함”에서 민주주의, 행동하는 시민이 재발견되었다. 민주주의가 없이는 복지, 민생, 평화, 안전도 없다. 시민행동은 이 나라의 자랑거리이자 세계의 희망이다.
2. 신자유주의의 말기적 현상들
<신자유주의 말기> 이후에는 사회민주주의가 올 것인가 생태주의가 올 것인가?
신자유주의는 양극화와 사회의 해체를 가져왔다. 극단주의와 군사주의 만성화와 국민 없는 감시국가, 지구 환경위기를 불러일으킨다. 알파고의 등장은 3-4차 산업혁명(탈산업사회)을 가져왔다. 2차 산업혁명인 "대량생산 대량소비"에서 "자동화-디지털 혁명"으로, 그리고 "디지털, 바이오산업", "인공지능, 로봇, 네트워크 플랫폼, 초연결/ 지능성" 등으로 이어진다.
신자유주의 말기가 되어 산업간 충돌을 넘어 사회와 생태와의 충돌을 야기한다. 전통적인 계급이나 계층 경계의 파괴가 오며, 실업과 불완전 노동이 증가한다. 교육된 불안정 노동자(Cognitive Precariat) 정치적- 경제적 주체로서의 '다중경제자아(multiple economic selves)'가 생긴다. 또한 새로운 권력(폭력)과 통제가 출현하게 된다. "기록된 미래" - CIA가 직접 투자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사람의 행동과 생각이 기록되어 미래의 행동이 예측되어 체포할 수 있다. 인종을 넘어 2종으로 넘어간다. 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네안데르탈인이 경쟁했던 역사처럼, 100살까지 사는 지금의 종과 200살까지 사는 종의 경쟁, 그리고 인간과 로봇의 경쟁의 출현이 다가온다.
3. 전환의 토대와 상상력
그렇다면 다른 세상은 가능한가?
현재는 미국의 강시대를 넘어, 미국 트럼프대통령의 정책을 보면 “전체적 세계운영”을 포기한 상태다. 시대의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오고 있다. 우리가 인민이며, 상리공생과 소통으로 나아가야 한다. "Leave No one Behind" - 단 한사람도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
대한민국 국가는 분단한반도, 동북아시아, 세계화, 정보화, 지구 생태 위기를 고려해야한다. "국가안보"라는 단어, 국민을 보장의 대상으로 거론된 건 60년대 유신 때부터다. 성장의 패러다임에서 행복으로, 안보에서 안녕으로 가야한다. "안녕들 하십니까."의 대자보를 통해 깨달은, 우리는 "사를 버리고 공을 위해 일하라"에서 "자기의 몸을 소중히 하고 제 몸을 아낌"으로 가야함을 발견했다. 정권, 재벌을 위해 봉사하느니, 스스로를 사랑하라.
세월호 참사와 촛불광장에서 권리기반의 접근을 생각한다. 국가가 국민을 구조해야 할 책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시민들은 "인권기반접근"으로 가장 주변화 되거나 배제당하거나 차별당하는 이들에게 초점을 둬야 한다. 성에 대한 규범, 다양한 형태의 차별, 권력 불균형을 분석하고 접근해야한다. 자치권, 참정권, 평화적 생존권, 여성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 장애인의 권리, 이주자의 권리로 나아갈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대립구도, 진영화로는 해결을 할 수가 없다. 여성주도의 정치, 사회 등의 아직 개발되지 않은 부분을 회복해 나아가야 한다. “엄한 아버지 프레임 vs 자애로운 어머니 프레임”, “종북불순세력 vs 친일친미지배세력” 등이 아닌, “따뜻한 연대”, “공감의 연대”, “돌봄과 살림의 연대”로 나아가야한다. 도구적 의미를 넘어 공감과 연대의 목적, 가치를 만들어 나아가고, 고유성, 협동의 방식과 네트워크의 다양성이 필요하다.
4. 주권자가 이끄는 새로운 나라
국민 없는 국가, 특권체제, 불평등, 낡은 정치에 대한 항의가 일어났다. 특권과 불평등 체제의 개혁, 주권자 주도의 정치개혁에서 변화를 가져오길 원한다.
2017 촛불권리 선언 : 촛불은
-국민위에 군림하는 대의 정치를 개혁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전진시키는 주권자 행동이다.
-특권 세력을 위해 남용된 공권력을 용납하지 않는 주권자의 직접 행동이다.
-부패와 특권을 만드는 일체의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정당한 항의다.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고 언론을 통제한 권력과 이에 협력한 언론에 대한 심판이다.
-재벌이 누려온 특권과 부당한 부의 대물림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시민 행동 선언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회복하고 불행한 노동을 없애고자 하는 시민들의 절규다.
-생존권을 보장받으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 선언이다.
-불평등한 교육, 서열화.획일화된 훈육 체제에 대한 저항이다.
-평화로운 공존의 권리와, 외교.국방.통일 정책을 민주적으로 결정하기 위한 외침이다.
-모든 생명이 자신의 터전에서 조화롭고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한 행진이다.
2017년 3월 11일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2017 촛불권리선언'에 함께한 사람들
5. 토론
질문1 : 시민들은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퇴진" 구호는 외치는데, "사드 반대" 구호는 안 따라하는 경우가 있었다. 주최 측에서 구호와 발언자 선택의 초점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응답 : 광장에 나온 시민이 "사드문제"로 다 나온 건 아니다. 주최 측 내부에서는 "어디까지 구호를, 어떤 발언자를 선택 해야 할지" 에 대해 의견이 많이 나온다. "그래도 절박한 사람의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 발언자를 결정을 하지만, "이것 또한 무대권력이 아니냐?"라는 말이 많이 오고갔다. 회의 후에 대체로 동의하는 구호내용을 넣고 빼고 해왔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집회 주최 측에서 구호를 몇 개 내놓았었다.
2월에 '시민토론'이 있었다. 어려웠던 점이 있었는데, "DJ DOC 가사를 여성혐오로 봐야하는가?", 그러면 "사과를 해야 하는가?" 등의 문제들은 주최 측에서 상당히 어려웠던 문제였다.
질문2 : 탄기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응답 : 탄기국은 네 번째 강의 3.29일에 주제로 오시기에 그때 나누도록 하자.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_이영일
거울을 닦고 나를 보며 힘들다고 말하자.
거울을 볼세가 없다.
거울에 얼룩이 끼어 내 얼굴의 얼룩인지 거울의 얼룩인지 헷갈린다.
거울을 볼세가 없어서 거울에 묻은 얼룩을 그대로 두었다.
내 얼굴의 얼룩도 그래도 두었다.
이제 거울 볼세를 달라고 하자.
거울을 닦자, 내 얼굴을 닦자. 내 거울을 더럽힌 더러워진 공기에게 욕하자.
내 얼굴을 더럽힌 거울도 못 보게 한 국가에게 욕하자. 내가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말하자.
왜? 불편하니까.
춤추기가 힘든 시대다.
춤출 힘이 없다.
춤출 시간에 누워서 쉰다.
춤추고 싶다고 말하자.
충분히 쉬자. 놀고 싶다고 말하자.
왜? 사람은 놀아야 하니까.
우리는 여유를 가지고 거울을 보고 여가시간을 보낼 시간 없이 쫓기며 살아가고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TV에 나오는 광고와 학교에서 가르치는 정보와 국가에서 운영하는 정책을 그대로 믿고 살아왔다.
그러나 그 쳇바퀴는 우리를 쉬지 못하게 하고, 인간의 모습을 잃게 만들었다.
그 쳇바퀴는 우리가 국가와 대기업에서 구입해야 했지만,
그 쳇바퀴가 우리에게 준 것은 무책임과 무배려와 이용과 갈취였다.
이제 그 쳇바퀴를 던져버리자.
그 쳇바퀴의 주인은 국민의 1%다. 99%인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사용하고 우리가 서로 돕자.
우리가 쉬고, 우리가 거울을 보며, 우리가 사랑하자.
우리가 음악을 듣고 춤 출수 있도록!
“우리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